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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eu La Rochelle dans la Nouvelle Revue Francaise et la Revolution Nationale sous la politique de presse de l'Occupation

Drieu La Rochelle dans la Nouvelle Revue Francaise et la Revolution Nationale sous la politique de presse de l'Occu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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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 점령국의 입장을 반영시켜주는 부차적인 정책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계이다. 하지만 1940년에서 1944년까지 독일의 점령지였던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또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왜냐하면 프랑스 비시정부의 이데올로기인 "민족혁명"만 보더라도 그것은 독일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라 대독협력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정책이기 매문이다. 이러한 시각에 입각해서 문화정책과 관련된 대독협력자들의 행동에 담겨진 그들의 이상을'판단'하기보다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고는 1930년에서 1944년간에 문화정책의 일환인 출판정책에 참여한 대독협력문인인 피에르 드리유 라 로셀의 지적 여정을 살펴보는데 있다. 드리유는 독일의 출판계 정책에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상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참여한 것이다. 그의 이상은 이미 전쟁 전부터 형성된'새로운 유럽'Europe nouvelle이다. 드리유는 새로운 가치인 유럽 통합이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데카탕스의 절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라 여겼고, 파시즘으로 무장된 강력한 독일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럽이 탄생되길 바랬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끊임없이 출판정책을 감시하는 독일 기관Propaganda- Staffel 에 의해 검열되었던 것이다. 『신프랑스지N.R.F』의 운영이 드러유의 의도와는 달리 독일기관에 끌려가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결국 드리유는 1943년 『신프랑스지』를 떠나서 그의 동료인 루시앙 콤벨이 이끄는 『민족혁명Revolution nationale』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드리유는 여러 차례의 글을 통해 그동안 독일기관이 실시하였던 정책을 은근히 비판해나갔으며, 결국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한 점에 대해 스스로를 비관하였다. 자살을 앞두고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나는 프랑스인이 아니라 유럽인이다. " 이 말처럼 그는 독일점령을 '새로운 유 럽'을 건설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고, 이를 위해 『신프랑스지』와 『민족혁명」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원했던 유럽 건설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하계 진행되었고 오늘날 유럽공동체가 확립되어 그들만의 유로Europ라는 단일화패체제가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물론 현재 유럽공동체의 성격이 드리유 라 로셀이 주장한 것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문화정책에서부터 시작할 것을 주장한 드리유의 '새로운 유럽'은 유럽 통합의 지적 계보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따라서 그를 맹목적인 대독협력자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비뚤어진 협력유럽주의자'로서 재평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해 본다.

1. Introduction

2. Illussion de Drieu chez la N.R.F.

3. Critique de Drieu chez la R?volution Nationale

4. 'Europe nouvelle' de Drieu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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