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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淸辨比量の東アジアにおける受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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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본고에서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7-8세기 동아시아 불교상황, 특히 유식사상의 교파, 학계를 해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청변(Bha vaviveka, 490-570)의 비량이 동아시아에서의 수용되는 상황과 그것을 둘러싼 제사(諸師)의 해석을 검토한다.<BR>&nbsp;&nbsp;청변을 동아시아에 소개한 사람은 현장이지만, 현장 본인은 청변에 대해 낮게 평가했다는 사실은 『대당서역기』의 설화나 현장의 인명 등으로부터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원효나 원측 등은, 청변의 설이 유식설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었음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규기 이후의 제사는 청변을 유식파와 대립하는 인물로써 부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그를 비판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명 방법을 동원하였다.<BR>&nbsp;&nbsp;일본에서는 청변이 삼론종 조사로 간주되었으며, 나라시대부터 헤이안 초기의 삼론종과 법상종의 논쟁에서는 청변의 비량이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논쟁에서 청변은 일승과 불성(佛性)을 설하는 인물로 비추어졌는데, 그 배경에는 화엄종 법장의 공유논쟁과 삼승일승논쟁을 접목하는 해석이 자리하고 있음이 인정되고 있다. 또한 그 논쟁에는 청변비량과 공통된 내용이 있는 『대불정경』의 진위에 대해서도 문제시하였다.

Ⅰ. はじめに<BR>Ⅱ. 肯定から否定へ<BR>Ⅲ. 掌珍比量に對する評?の?遷<BR>Ⅳ. 一乘家としての淸辨<BR>Ⅴ. まとめと今後の課題<BR>한글초록<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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