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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호남지역 유배-지식인의 몇 가지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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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6세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유배라는 정치적 현상이 호남 사림 문화에 끼친 문화적 영향을, 세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반성적으로 개괄하려는 것이다. 호남의 유학 사상에 대한 선행 연구는 16세기가 호남 사림 문화에 결정적인 시기 -일종의 황금 시대- 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글은 바로 이러한 황금시대가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시사하는 몇몇 개성적인 장면들의 의미를 질문함으로써 그 반성적 의미를 조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은 16세기 호남사림문화의 전성기에 나타났던 세 가지 사례를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중종실록』의 한 구절, 임진왜란시기 고경명 일가의 순절, 기축옥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유배 - 지식인들의 정치적 기획과 전쟁에 깊숙이 개입된 한 가문의 행적이 어떻게 유배의 기억을 정화하는지, 그리고 호남 사림의 만개가 가져온 과잉된 상황이 사림간의 불화와 그로 인한 파국적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세 가지 사례들에 매개되어 있는 유배의 그림자를 검토함으로써 이 글은 과거의 사건들이 21세기의 ‘호남학’을 탐구하는 현실에 어떤 교훈을 주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這一篇論文以三類事例爲中心批判地槪括了, 以公元16世紀朝鮮時期爲背景, “流配”這一政治的現象對湖南士林文化的影向. 對湖南儒學思想之先硏究成果認爲, 公元16世紀就是湖南士林文化的決定的時機-黃金時機. 這篇文章批判地探討了, 通過對機個重要的情況的分析, 這一黃金時期是怎樣沒落的. 爲了這一目的, 這篇文章考察了公元16世紀湖南士林文學盛行時機所發生的三類事例. 這就是: 一, 『中宗實錄』的一部分內容, 二, 壬辰倭亂當時高敬命 一家的殉節, 三, 己丑獄死. 這三類事例各自表達了,“流配”一知識分子的政治的企圖和深入地介入戰爭的一家門的行迹如何淨化“流配”的記憶,而且探討了湖南士林的滿開所帶來的過分的狀況對士林的不和諧而造成的破局的結果. 同時, 通過檢討與以上已說明的這三類事例有聯的“流配”, 我們可以得到了, 讓我們思考過去的事件對我們在探討21世紀“湖南學”堂中, 應當如何思考這樣的現實的敎訓.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유배의 일상성

Ⅲ. 호남 지역 유배-지식인의 양상

Ⅳ. 맺는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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