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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Философия Григория Сковород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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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출신의 그리고지 사비치 스코보로다(1722-1794)는 시인이자 예언가, 신비주의적 성향의 순례자로서 러시아 최초의 철학자로 넓은 의미에서 칭할 수 있다. 이글에서는 18세기 러시아 근대와 함께 러시아적 사유체제의 시작으로서의 스코브로다의 삶과 그의 철학적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스코브로다의 철학적 견해를 알아봄에 있어 가장 눈에 뜨이는 대복은 그의 인식론 지행과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원용한 방법론이다. 앎이라는 것을 무엇보다 ‘나’와 외부세계, 그리고 내부의 경험과의 관계에서 찾는 그의 생각은 존재론과 밀접한 관련하에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스코브로다는 사물의 본질에 있어 두 가지 대립되는 측면이 있다고 간주한다. 죽 ‘질료적인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유한한 것’과 ‘영적인 것으로, 세계는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첫 밴때는 인간의 ’작은 세계‘(микркокосм)가 있으며, 두 번째로 전 우주의 ’큰 세계‘(Макрокосм)이 있고, 그리고 상징 세계로서 ’성서‘가 있다. 여기서 스코브로다 철학의 특징인 비경계성과 불정확성이 드러나는데, 그에 따르면 두 가지 사물의 시작과 세 종류의 세계가 서로 유기적으로, 구별없이 관계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둘 속의 하나, 하나 속의 둘”의 개념으로 사물의 두 대립되는 개념을 구별없이 함께 사유하고 있다. 또한 “진실한 인간과 신은 하나이다”라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을 연상시키기도 하느 s주장으로 그의 사유체계는 심히 인간중심적인 체계를 지향하고 있으며, 윤리학에 있어서도 긴적 윤리론에 많이 경도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코브로다의 이런 철학적 사유를 논함에 있어 후대의 많은 연구가들은 그의 철학적 견해가 체계가 없으며 산만하며, 근대 철학의 명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많은 비판을 한다. 아마도 이런 비판은 스코브로다의 자신의 철학을 논함에 있어 선택하고 있는 ‘상징론’이 가져오는 모호함에 있을 것이다. 원래 끼예프의 모힐라 아카데미에서 신학을 공부했던 스코보로다는 자신의 철학을 그 어떤 학문적 체계로 정립시키려는 일체의 시도를 회피하였으며, 한 자아도취자와의 대화, 영혼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슬라브인에게 주는 교훈 등의 형식으로 소박하며 ‘민중적’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이런 면은 근대 철학의 학문적 엄정성으로서는 수용하기 힘들지만, 18세기 중후반 서구화로 표징되는 러시아 근대화의 여정 속에서 러시아적 생각하기의 틀은 러시아적인 독특한 흐름에서 형성되어 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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