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러 유형의 소설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독백소설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있는데, 루이-르네 데 포레의 『말꾼』 과 알베르 카뮈의 『전락』 은 이 장르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특히, 이 두 작품은 서술기법 상 독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인하고 있어서,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와 비교해서 긴장이 팽배한 가운데서 독서가 이루어지고, 때로는 화자의 의도적인 자극에 독자의 심기가 뒤틀리거나 몹시 상하게 되고, 혹은 화자와 독자 사이에 정면 충돌이 빚어지기도한다. 이 연구는 이런 소설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석학적 사고에서 출발했다. 사르트르의 지적대로, 『전락』 은 카뮈 작품들 중에서 “가장 멋진 작품이면서도 이해가 가장 잘 되지 않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작가의 삶과 작품을 연관시켜 읽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이와는 전혀 다른 시각, 즉 언어와 텍스트에 중심을 둔 해석학적 사고로 『전락』 에 접근하고 있다.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므로, 전혀 다른 것을 발견해낼 수도 있다. 『전락』 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위 독자의 심기를 몹시 건드리는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자의 의도적인 농간에 의해서 독자가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백을 통해서 회개하고자 한다는 화가 장-바티스트 클라망스는, 그 언어의 빈정대고 비꼬는 투는 차치하고라도, 작품의 마지막 장에 가서 지금까지의 고백이 사실과는 무관한 거짓 고백일 수도 있다고 털어놓음으로써 독자를 우롱한다. 이것은 자기 기만이자 독자에 대한 기만이기도 하다. 그때까지 그의 고백을 철썩 같이 믿었던 순진한 독자는 더 이상 갈피를 잡지 못하는 곤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서술 전략은 『전락』 보다 10 년 앞서 발표된 루이-르네 데 포레의 『말꾼』에서 더욱 치밀하고 강렬하게 구사된바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이 두 작품은 내면독백 소설이면서 ‘진실’이 아니라 ‘거짓’의 미덕을 훨씬 더 찬양하고 있는 듯하고, 클라망스나 말꾼이나 거짓예찬론자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독자를 유인하는 함정이자 작품을 읽는 열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거짓 예찬은 인간의 언어 행위가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속성을 ‘고발’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에 속하기 때문이다. 『전락』 은 『말꾼』 과 더불어, 모리스 블랑쇼가 주장하는 대로, 소설이 “기만의 작품” 임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만 mauvaise foi 은 작가의 글쓰기 행위에 깃들이어 있을 뿐만 아니라(소설은 ‘허구’이고 모든 예술 art 은 조작 artificium 이다), 독자의 기만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소설도 읽혀지지 않을 것이고, 또한 언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기만도 있다. 이러한 기만의 긴밀한 관계를 실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은 그다지 흔하지 않지만, 『전락』 과 『말꾼』 은 작품 자체를 통해서 소설의 본성과 실체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결론적으로, 『전락』 은 소설의 허구성을 거듭 상기시키면서 거짓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고 있으며, 더 나아가 문학적 진실이란 “환상과의 협약”이라는 문학의 교유한 본성 자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Ⅰ. Mauvaise consience
Ⅱ. 《Un commencement dérisoire》
Ⅲ. Apologie du mensonge ― La chute
Ⅳ. Menteur fini ― Le Bavard
Ⅴ. Effets de l´art : Tromperie
Ⅵ. Infidélité du langage : ambiguité
Ⅶ. Un demier mot
Bibliographie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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