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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高麗 賀平獨使의 수로 교통

Analysis of Works and Deeds of Jeong Mong-Ju(鄭夢周) at the First Visit as an Envoy to Ming(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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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2년(공민왕 21)에 고려는 賀平獨使를 명나라 南京으로 보냈다. 정사는 洪師範이고, 서장관은 鄇萝周이다. 하평촉사 일행이 탄 선박은 황해를 건너 중국 대륙에 도달한 후 太倉, 長江 주변의 내수로 등을 거쳐 남경에 도달했다. 이번 항해의 소요 기간은 불과 19일로 항운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러나 이들이 해로를 통해 귀국할 때 항주만 許山 앞바다에서 격한 폭풍우를 만나 홍사범 등 39명을 익사하고, 정몽주 등 113명은 13일 동안 표류 끝에 간신히 구출되었다. 익사자와 생환자의 비율이 1대3인이다. 이번 조난 사고는 명나라 남경을 오가는 고려 사행 노선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정몽주는 다시 남경을 들러 자문을 다시 받아왔다. 이때 사행 노선을 안정선이 확보되는 수·육로 겸용 노선으로 변경되었다. 변경 노선은 남경 - 京杭大運河 강소 내수로 - 산동 내률 육로 - 산동반도 북단 蓬萊 - 廟島列島 해로 - 요동반도 남단 - 요양 육로 - 의주 - 개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경항대운하 강소 내수로는 중국 선박을 이용하였고, 모도열도 해로는 고려 선박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Jeong Mongju(鄭夢周) went to Nanjing(南京), Ming(明) as the secretary of Hong Sabeom(洪師範) on 1372(21st year of King Gongmin, 恭愍王)-1373(22nd of King Gongmin(恭愍王), which was his first visit to Ming as envoy. After this visit, on his return to Goryeo, his ship was wrecked in a storm. He barely survived and went back to Nanjing for some consultation and returned with altered schedule and route. In Poeun Works(圃隱集), there are works written those days. But the arrangement of works is confused, it is hard to look into his deeds. On this paper, I put those works in chronological order, and corrected which are widely known but wrong.

국문초록

1. 서론

2. 賀平獨使 사행의 수로 노선

3. 賀平獨使 사행의 선단 규모

4. 賀平獨使 사행의 노선 변경

5. 결론

참고문헌

영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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