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저널
종래 고구려 태왕호는 흔히 국제적 계기를 통해 성립되었고, 주로 고구려 중심의 차등적 국제질서에서 기능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각종 금석문 자료를 검토한 결과, 태왕호는 고구려의 독자세력권이 확립되기 이전인 고국원왕대에 제정되었음을 파악했다. 더욱이 이러한 태왕호는 초기 왕들의 ‘王’호와 엄격히 구별된 새로운 군주호로서 6세기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확고한 제도적 기반을 지녔다. 또한 소수림왕을 제외한 4세기 중반-5세기 초의 왕들은 國岡上이라는 장지명을 공유했는데, 실제 이들의 왕릉은 ‘경사지 위의 평탄면’에 해당하는 ‘國岡’ 지형에 입지했다. 이러한 國岡型왕릉입지는 도성지역 전체를 아우른 국왕의 초월적 위상을 나타내기 위해 채택되었고, 이와 결부된 태왕호는 도성의 귀족세력에 비해 월등히 격상된 국왕의 초월적 위상을 표출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고구려 太王號는 종전의 연구경향과 달리 기본적으로 국내 정치체제를 기반으로 제정되었던 것이다.
머리말
1. 太王號의 제정 시기
2. 國岡型왕릉입지의 성립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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