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乾隆39年 祁門訴訟文書’를 통해 淸代 主僕 관계의 한 양상 박 영 철 明淸時代 徽州에서 성행한 佃僕制의 성쇠에 관한 연구는 이미 많이 축적되어 있으나 대부분 사회경제사적 측면의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본고는 이 문제를 법제사적 입장에서 접근하여 雍正制와 乾隆帝 등이 반포한 천민해방(開豁世僕)의 諭旨가 佃僕의 천민해방에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乾隆 연간의 庄僕 査氏와 生員 王氏의 소송을 통해 구체적으로 탐구해 본 것이다. 3년간에 걸친 庄僕의 천민해방을 위한 소송에서 乾隆帝의 諭旨는 지방향촌에서도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재판의 결과와 상관없이 3년에 걸친 소송에 나타난 佃僕의 법의식을 비롯한 문화적 역량이 주목된다.
从《乾隆三十九年祁门诉讼文书》看清代主仆关系的一个侧面 关于明清时代徽州盛行的佃仆制已有很多研究,但是大部分研究主要以社会经济方面为中心。对佃仆制的消失问题,则需要关注社会法制史的侧面。比如对佃仆制的研究,雍正5年雍正帝颁布的开豁贱籍的谕旨涵义幽微。作为中国历史上第一部贱民解放法律,这道谕旨的影响不容忽视。一些法律文书对佃仆制消失的具体情况给我们提供了有价值的研究资料。本文对《乾隆三十九年祁门诉讼文书》进行了具体分析,从中我们可以看到开豁贱籍的谕旨在佃仆制的变化上所起的具体作用。这篇诉讼文书的重要性不止于此,通过这篇文书我们还能看到当时佃仆的生活及其法律知识、法律意识的发展水平。
序言
1. 소송의 개요
2. 소송의 전개
3. 소송과 主僕의 分
結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