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조선이 건국된 뒤 100여 년이 지나 16세기 중엽에 이르면 在野에서 실력을 기른 士林 세력들이 몇 차례에 걸쳐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은 뒤 마침내 중앙 정계와 학계를 장악하여 이른바 사림의 조선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이 新進 士類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연원을 밝히고 정통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圃隱 鄭夢周를 儒宗으로 받들고 포은의 학이 冶隱 吉再를 거쳐 江湖 金叔滋, 佔畢齋 金宗直, 寒暄堂 金宏弼, 靜庵 趙光祖로 이어졌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들을 문묘 종사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들은 정몽주와 길재가 비록 나아가 죽음(就而死)과 물러나 지킴(退而守)의 차이가 있을 뿐 不事二君의 節義와 大義名分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생각하여 하나의 연원으로 묶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길재가 살았을 당시나 그의 문집 속에서는 정몽주와 從遊한 사실이나 관계를 밝힐 자료가 없으며, 오히려 그는 李穡이나 權近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특히 권근은 사림의 학맥과는 반대편에 선 이른바 조선 초 勳舊派를 연 인물로 일컬어지기 때문에 學脈 傳承과 道學淵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1926년 경 뒤늦게 발견된 「白猿帖」을 통해 정몽주의 문하에는 松京의 門生들만이 아니라 同鄕인 洛東江 中流 지역의 문생들이 있었으며, 이들 ‘洛中’의 포은 학맥이 조선 초 낙동강 중류 지역을 시작으로 사림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金烏山에 은거한 吉再와 八空山에 은거한 뒤 순절한 敬齋 洪魯이다. 그들은 정몽주와 정치적 입장을 같이 하였으며, 유교적 대의명분에 따라 처신하고 實踐躬行과 儒敎的 禮敎를 퍼트리는 데 힘씀으로써 조선의 道學을 열어갔다.
1. 여는 글 - 포은 정몽주와 '洛中' 포은 학맥
2. 儒宗 정몽주의 도학과 리학
3. 吉再와 洪魯의 도학사상 계승
4. 맺는 글 - '洛中' 포은 학맥의 계승과 조선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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