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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映湖樓 차운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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映湖樓는 安東의 대표적인 樓亭으로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아홉 번의 重建을 거쳤으며, 고려 金方慶으로부터 지금까지 역대문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본고에서는 누정이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영호루 題詠詩를 통해 고찰해 보았다. 초창기 영호루 제영시인 고려시대 蔡洪哲 등의 시를 고찰한 결과 높게 세운 영호루의 위용과 영호루에서 조망되는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시가 많았다. 대부분 仙境을 노래하였으나 禹倬만이 풍요로운 농가의 전경을 읊었다. 영호루 관련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공민왕의 방문과 사액이었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내려왔으며, 영호루에 들른 것을 기념하여 수복 후 현판을 써서 내려주고 안동을 大都護府로 승격시켰는데 이는 안동 특히 영호루 누정에게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에 대해 白文寶, 李穡등 당대의 문인들이 시문을 남겼으며, 역사서에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또한 이는 영호루를 공식적이고 국가적인 누정으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영호루에 방문한 문인들은 채홍철, 우탁 등을 비롯하여 공민왕의 사액현판 그와 관련된 백문보와 이색 등의 글을 보고 영호루시를 계속 썼는데 이에 차운한 인물로는 鄭夢周, 鄭道傳, 權近, 金宗直, 李滉 등 역대의 문인, 학자 등이다. 현판에 걸린 이들의 시문은 후대에 오르는 문인들로 하여금 영호루를 각인시키고 또 시를 짓는 근거가 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영호루는 경관은 물론 역사와 인물의 자취가 담긴 유서깊은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오늘날 영호루의 명성은 물리적 경관, 역사적 사건, 문학적 특성 등에 의해 완성된 셈이다.

1. 서론

2. 논의의 전제

3. 물리적 배경- 누정과 경관

4. 역사적 사건- 공민왕의 사액

5. 문학적 의미- 현판과 차운

6. 정몽주시 차운

7.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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