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군에 의한 점령개혁 중 하나에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금지가 있는데, 선원보험법, 후생연금보험법에서 국적조항이 삭제된데 이어 신 노동법령에서는 명문으로 차별금지가 규정되었다. 그러나 맥아더 헌법초안에 있었던 외국인 보호규정은 결국 유산되고 말았다. 점령기 재일코리언의 지위는 한편에서는 참정권정지와 외국인등록이 의무화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일본학교로의 취학의무를 갖는 이율배반적인 것이었다. 1952년 4월, 일본은 주권을 회복함과 동시에 재일코리언은 일본국적을 상실하고 외국인임이 선언되었다. 이후 국민연금법을 시작으로 사회보장입법의 대부분에 ‘국적조항’이 재등장하여 국적에 의한 차별이 일반화되어 갔다. 그러나 베트남 난민 발생과 서미트(summit) 발족을 계기로 일본이 국제인권조약과 난민조약을 비준하자 많은 ‘국적조항’이 겨우 삭제되었다. 난민 덕분에 재일코리언처우가 크게 개선되었던 것이다. 재일코리언 처우문제에는 항상 ‘국적’이 따라다녔다. 여전히 남겨진 문제로서 1)민족학교의 제도적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브라질 학교가 생겨나고 말았다는 것. 2)난민조약비준에 따라 국민연금법의 국적조항은 삭제되었지만 필요한 경과조치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재일코리언 장해자 및 고령자들 사이에 무 연금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3)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인정하는 법안이 1998년 일본 국회에 제안되었지만 여전히 성립되지 않았다는 점. 한편 한국에서는 2005년 법개정이 실현되어 2006년 5월 통일지방선거에서 아시아에는 처음으로 외국인이 한 표를 행사했다. ‘국적’이란 속박에서 벗어난 해방도에 있어서 한일간 격차를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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