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호남이 의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은 임진왜란이라 할 수 있다. 호남인들은 왜란과 호란이라는 국가적 환난에 직면하여 타 지역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활발한 의병봉기와 충절을 표출하였기 때문이다. 의의 실천은 전통적인 사대부의 우환의식과 중앙정계에 진출하고 싶던 사대부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상호작용으로 이해된다. 호남인의 절의는 안방준의 절의를 표창과 정표운동으로 더욱 빛을 발하였다. 양란 후 향촌사회에서 사족은 기존의 지위를 상실하거나 도전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병활동과 충절인물의 배출은 가문의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이것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회유와 견제를 하였던 것이 중앙정부 권력이었다. 그리하여 절의는 지역의 몇몇 문중 혹 집단이 독점하였다. 곧 절의는 문중의 ‘집단의식 또는 심성’이 되었으며, 각 지역에 문중 혹은 문중 연합의 형태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지역의 정서로 뿌리를 내렸다. 과거의 경험은 바람직한 정책이나 제도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토대이며, 현재 우리의 정치적 견해는 필연적으로 과거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 영향을 주고 색깔을 입힌다. 거의 모든 역사적 기억들은 정치적 목적의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1950년대 초반 한국 사회는 6・25 남침과 한일국교정상화 문제에 직면하였다. 이에 지나가버린 과거를 의미지우면서 동시에 현재화하는 행사, 곧 임진왜란 360주년 추모행사를 거행하였다. 뒤이어 과거의 절의를 재신화하여 지역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호남절의사』를 편찬하였다. 조국을 위한 희생, 곧 절의야말로 민족의생을 존속시키는 자양분과도 같은 것이었다. 과거의 재신화를 통한 정체성의 재구성은 그 수단이자 방법의 하나였다. 이 경우 임란은 역사에서 최상의 기념비적 사건이었고, 이런 측면에서 절의는 대중동원의 이데올로기로 오용될 위험도 있다.
Imjin-waeran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s a historical event for Honam to be called as a province of justice. It's because Honam expressed remarkably patriotic activities through righteous army uprising and fidelity in comparison with other provinces when the country was at the crisis of war like Waeran and Horan. Practice of justice can be understood as interaction of the Consciousness of Suffering of the traditional nobility and their desire for political power. Honam's fidelity or loyalty was heightened by Ahn Bang-Joon's citation and public recognition movement called Jeongpyo. In the late Chosun Dynasty, the number of members who showed strong fidelity, loyalty and righteous army activities was an important symbol of the authority of a good family, The central government utilized that properly with appeasement and check. The expression of the fidelity or loyalty to the country was monopolized by a few local families or groups, and finally developed into a "collective consciousness or moral nature" of a family. The collective consciousness extensively spread as a form of a family or a collective family for a long time to be rooted as a local emotion. All the historical memories function as a symbol of political intension. In the early of 1950, Korea faced with Korean War, 6・25 and Korea-Japan Normalization Talk. And also there was the 360th memorial anniversary of Imjin-waeran. The fidelity or loyalty was a patriotic sacrifice for the country and a nutrient to maintain the life of the nation. In this meaning, Imjin-waeran was the most monumental event in Korean history and in this view, fidelity or loyalty had the danger of being misused as an ideology to mobilize the public.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며
Ⅱ. 행의의 기원과 표창
Ⅲ. 충절가문의 인정욕망
Ⅳ. 절의의 기억과 소비
Ⅴ. 나오면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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