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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穆克登碑文之“土門”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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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극등(穆克登)은 제2차 중조 변경답사에서 지금의 두만강[당시 이 강을 중국 청왕조는 “토문강(土门江)”이라 불렀고 조선왕조는 “두만강(豆满江)”이라고 불렀음]과 압록강의 발원지를 확정하고 비를 세워 기록을 남겼다. 목극등의 변계답사는 중조 두 나라가 바로 두만강을 변계강으로 하는 전제에서 진행된 것이다. 목극등 변계답사 전과 후의 조선문헌들에서도 “土门”과 “豆满”이 뒤섞이여 혼잡하게 기록되었는데 당시 “토문”과 “두만”은 모두 같은 하나의 강을 가리키는 것이였다. 당시 청나라 측이 말하는 “土门江”이 바로 조선 측이 말하는 “豆满江”이였고 역시 바로 지금의 图们江을 가르키는 것이였는 바, 이에 대해 중조 양측은 그 어떤 의혹도 없었다. 목극등이 확정한 “土门”강의 발원지는 바로 두만강의 발원지이였고 비문의 “土门”이 표시하는 것은 바로 중조 변계강의 주체인 두만강이지 결코 다른 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목극등의 변계답사는 변계강의 주체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다시 새롭게 변계강을 확정하러 간 것이 아니였으며, 또 먼저 어느 강의 발원지를 경계강으로 규정한 후이 발원지가 소속되는 강을 국계선으로 규정한 것도 아니였다. 목극등의 변계답사는 바로 “변계강이 이미 확정된 후 그 강의 발원지를 다시 찾는” 행동이였다. 목극 등이 비석을 세운 목적은 图们江과 압록강의 발원지가 모두 비석이 세워진 곳에서 발원한다는 것을 표시한 것이지 결코 두 나라 변계강의 주체가 어느 강이라는 것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목극등 비석은 바로 “변계강의 발원지를 정한 비석”이다. 이 비석을 하나의 연계점으로 하여 이미 규정된 변계강인 두만강과 압록강의 발원지에서 동과 서로 갈라지는 이 두 갈래의 강을 이어놓았다. 목극등 비석이 세워진 곳은 바로 두만강과 압록강의 분수령이다. 비석 동쪽에 마주하고 있는 “토문” 발원지는 바로 두만강의 “첫 번째 지류 하류(初派下流)”와 “두 번째 지류(次派)”의 합류수로서 이 합류수는 동북쪽으로 흘러 홍단수(红丹水)와 합류하는데 이것이 바로 두만강의 발원지이며 그 강 흐름의 방향은 시종 동쪽으로 변함이 없다. 강 흐름이 후에 변화되여 북쪽으로 흘러간 것은 두만강 첫 번째 지류(初派)의 상류부분이다.

The Purpose of Mt. Baekdu’s bountary epitaph in 1712 is not the border’s decision talks, it is the beginning indication of two rivers. And that time chosun dynasty called the Dooman river as Tomoon river.

Ⅰ. 前言

Ⅱ. 史料中關于今圖們江爲中朝界河的記載

Ⅲ. 以圖們江爲界河,是穆克登査邊的前提

【국문초역】

【영문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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