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년 4월 낭트에서, 앙리 4세는, 카톨릭교와 프로테스탄트교 사이에 거의 40년동안 벌어진 내전에 종지부를 찍는 칙령에 조인한다. 이 칙령의 목적은 두 종교를 같은 왕국에서 공존시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백성이 왕의 종교와 다를 수 있음이 인정된 것이다. 이 칙령은 프랑스 신교도에게 일정한 양보를 하고 있다. 특히 바이아쥬에 의하여 두 도시에서 종교 의식의 자유가 허락된다. 그들은 또한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도 획득한다. 끝으로, 신교도에 관한 사건이 공정하게 처리되도록, 구교도 및 신교도 법관들로 구성된 혼합 법정이 탄생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제한도 뒤따른다: 파리 및 수많은 지방 도시의 신교 종교 의식은 금지되고, 정치적 집회도 신교도들에게는 금지된다. 끝으로, 칙령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 앙리 4세가 프랑스에서의 이러한 종교적 이원화를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낭트 칙령은, 모든 프랑스 사람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 불평등한 타협이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낭트 칙령의 제한에 관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낭트 칙령 400주년을 맞아 발간된 칙령 원본을 사용하였다.
Ⅰ. Introduction
Ⅱ. Le texte du préambule
Ⅲ. L’interdiction partielle du culte protestant
Ⅳ. La dissolution des assemblées politiques
Ⅴ. Conclusion
Bibliographie
〈국문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