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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La révocation de l’Edit de Nantes

낭트 칙령의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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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40년간의 내전 후에 프랑스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16세기 말에 조인된 낭트 칙령은, 프랑스 개신교에게 중대한 양보를 허락한다. 신교도들의 신앙의 자유를 승인하며 공민권과 법률권도 인정한다. 그러나 낭트 칙령은 분명한 제한도 포함하고 있어서 17세기에 신교도들은 어려움을 맞게 된다. 정말로, 앙리 4세가 사망한 후, 후계자들인 루이13세와 루이14세는 절대주의 정책을 취하고 개신교에 불리한 조치들을 채택한다. 즉 1680년 이후 루이14세는 일련의 왕령을 반포하여 낭트 칙령의 내용을 매번 부분적으로 지워버린다(신구교판사가 같은 수로 참여하는 재판부의 폐지, 관직과 대부분의 자유 직업에 대한 신교도들의 접근 금지, 신구교 통흔 금지 등). 이와 같은 법적 폭행이 있는 후에 곧 용기병의 군사적 폭행(dragonnades)이 자행되었다. 결국, 1685년 10월 18일 루이 14세는 낭트 칙령을 폐지시키는 퐁텐블로 칙령을 조인한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당시 프랑스에서 신교에 관한 사고방식의 변천을 살펴본 후, 풍텐블로 칙령의 내용 분석 및 이것이 프랑스인들의 종교심에 끼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Ⅰ. Introduction

Ⅱ. La situation du royaume à la veille de la révocation: une lutte permanente pour réduire le protestantisme

Ⅲ. L’édit de Fontainebleau

Ⅳ. Les conséquences de la révocation

Ⅴ. Conclusion

Bibliographie

〈한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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