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주의’와 ‘보편성’의 사이
「普遍主義」と「普遍性」のあいだ : スコットランド啓蒙と「国民文学」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한국학연구
- 제2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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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77 - 102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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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과 관련하여 질문해야 할 것은 ‘보편주의란 무엇인가?’‘보편성은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인 물음이 아니라, ‘보편주의와 보편성은 어떤 관계인가?’ ‘그 관계성이 어떠한 분석 장치로서 유용한가?’라는 프라그머틱한 물음이다. 이데올로기로서 (사칭된) ‘보편성’이란, 소위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의 공범관계’를 부드럽게 구동시키기 위한 윤활유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에 비해, 본고에서 제기하는 ‘보편성’이란 이 ‘공범관계’에 ‘절단’을 반입하는 ‘무엇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무엇인가’는 실체로서(=그 자신에 있어)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관계성’을 지시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여기’에 각인되어 있는 균열・틈새로서 현실적으로 작동하는(現働化, actualisation) 잠재성(virtualité)이다. 즉, 그것은 어디에선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사물)’이 아니라 ‘부재 원인’으로서의 ‘힘(역능, potentia)’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재서와 관련해서 우리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주지주의 문학론’의 기수로서 비평의 문제와 정면으로 씨름했던 최재서의 ‘보편성’에 대한 지향이, 국민문학 주간으로서 행한 명백한 ‘친일행위’에 다다랐을 때는 제국 일본의 프로파간다인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보편주의’로 낙착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보편주의적’ 해답이란, ‘천황’이라는 실로 단순하고도 ‘절대적’인 통일에 의해 조직된 ‘진정한 일본인’이라는 동일성 사고에 고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애초 최재서가 일본/조선이라는 그야말로 ‘보편주의와 특수주의 공범관계’인 이항대립에 대해 도래해야 할 ‘국민문학’이라는 ‘절단’의 계기를 도입하고, 게다가 식민지 조선의 작가와 비평가들이 ‘국민문학’으로의 대전환(즉, 일본문학, 조선문학의 동시적 지양)을 솔선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프로그램을 명시했을때, 그것은 여전히 ‘문제’의 토포스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있다. 다시 말해, 최재서가 제출한 ‘국민문학’이라는 ‘문제’는 잠재적으로―즉, 그것이 지향하는 ‘보편성’을 잠재성의 한 범주로 연결해 두는 한에서―이러한 보편주의적 ‘해답’에 대해 ‘영원히 충돌의 원천’(언제나 이미 ‘문제’인)과 같은 ‘사건’이었던 것이다. 최재서가 그러한 ‘해답’에 도달했던 데는 어떠한 종류의 필연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해답’(현세태, 現勢態)이 필연적이었다고 해도, 거기서 균열・틈새로 (징후적으로) 읽어내는 것이 가능한 ‘문제’(잠재태)를 적출해내는 비평적=위기적 외과수술을 시도해보는것, 그것이 식민지 상황에서의 ‘비평’의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과제이다. 나아가 (‘보편성’이 상실되어, 언제나 ‘보편주의’의 유혹에 사로잡혀 있는) 그것은 ‘근대’ 일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담 스미스가 이상으로 삼은, 자신을 ‘개량’하는 개인-제국의 주체로서, 그리고 시장경제의 단위로서 추상화・일반화된 ‘보편적 개인’이란 실은‘보편주의’적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점을 간파하고, 거기에 ‘비평’의 메스를 지속적으로 집어넣는 행위 안에서 ‘보편성’의 흔적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本講演は、「普遍主義」と「普遍性」」という一対の概念に関する理論的考察(前半)および、 崔載瑞の「国民文学」論と絡めて「スコットランド啓蒙」という話題の提供(後半)で構成されている。 前半の理論的考察において、 まず重要なことは、 「普遍主義」(「国民主義」「民族主義」「帝国的国民主義」など)とは、 つねに「普遍性」を詐称するものであるが、 その実態は「特殊性」の単なる量的な拡張である「一般性」に他ならず、 その「詐称」によるイデオロギー効果は「普遍主義と特殊主義の共犯関係」(酒井直樹)の隠蔽に他ならない、 ということである。 では、かように「詐称」されたものとは別に、 本論で概念化を試みる「普遍性」とはなにかと言えば、 まさにこの「共犯関係」に「切断」をもちこむ「なにか」である、 ととりあえずは言えるだろう。 それは、 「どこか」に実体として想定されるものではなく、あくまで「いま・ここ」に刻み込まれる亀裂・空隙として現働化(actualisation)する潜在性(virtualité)であり、 エチエンヌ・バリバールが「理念[理想]的普遍性」と呼び、 ジル・ドゥルーズが「『問題』としての≪理念≫」と呼んだような「なにか」である。 以上のように概念化される「普遍性」は、 「特殊」―「一般」軸(普遍主義)の基盤をなす同一性の思考(同一律)にまったく依拠しない差異的=微分的(différentiel)な「特異性」(singularité)を持つものであるがゆえに、 「問題」に対するあらゆる「普遍主義」的解答を「炸裂」させる。 このような「問題」という観点から崔載瑞の「国民文学」論を再審するならば、 それは、 日本/ 朝鮮という(まさに「普遍主義と特殊主義の共犯関係」である)二項対立に対して、 来るべき「国民文学」という「切断」の契機を導入し、 しかもその「国民文学」への大転換(すなわち、 「日本文学」「朝鮮文学」の同時的止揚)を植民地朝鮮の作家や批評家が先導する、 というプログラムを胚胎するその潜勢力において「普遍性」の「出来事」であったとも見なすことができるだろう。 この意味でも、 崔載瑞の「国民文学」論は、 親日行為という「解答」によって即座に断罪されるのではなく、 「問題」として理論的に取り組まれるべきであり、 その「問題」が生み出す亀裂や空隙に対しては「徴候的読解」の手法で臨まなければならない。 そのような読解の一助として、 本節の最後に、 崔載瑞初期の英文学研究への一視角を試論的に提出する。 後半は、 ある話題(トピカ)の提供であるが、 それは、 崔載瑞の有名な(悪名高い)「朝鮮文学=蘇格蘭文学」説に「トピカ的発見法」でアプローチする試み、 すなわち、 「スコットランド啓蒙」から「英文学」が生まれたという興味深い歴史的事実と、 崔載瑞の「国民文学」論とを重ね合わせてみることによって、 なんらかの発見がありうるのではないか、 という問いかけである。 イングランドとスコットランドの「合同」(1707年)の余波として「スコットランド啓蒙」運動が興隆することになるが、 そこには、 スコットランドの知識人たちが「ブリテン」という英・蘇両者を包摂(止揚)するカテゴリーへの投企を試み、 またそうするこ とにより大英帝国とともに世界に拡大する戦略をとった、 という側面がある。その一翼を担ったのが「改良」の手段としての「英文学」であり、 その最初の講義を行ったのが、 一説によると、 「古典派経済学の父」アダム・スミスであったというのには、 単なる偶然では片付かない思想史的な意義があったといえるだろう。 その講義の受講者であったジェイムズ・ボズウェルと、 18世紀イングランドの「文学王」サミュエル・ジョンソンをめぐるいつ
국문요약
1. 들어가며
2.‘보편주의’와‘보편성’의 사이
3. 스코틀랜드 계몽과 국민문학
4. 마치며
[日文摘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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