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학술저널

蘇軾 <寒食詩卷> 黃庭堅 跋文考(Ⅱ)

蘇軾<寒食詩卷>黃庭堅 跋文考(Ⅱ)

  • 100
110130.jpg

본고는 2012년 2월 &#61440;中國文學&#61440;(韓國中國語文學會) 제70집에 게재한 논문「蘇軾<寒食詩卷> 黃庭堅 跋文考(Ⅰ)-作詩·作書 時期 問題와「此詩似李太白, 猶恐太白有未到處」句 析意」-의 후속으로 이루어진 연구로서 蘇軾의 서예작품인<寒食詩卷>에 붙인 黃庭堅의 跋文에서 擧論한 李西臺가 과연 누구인지를 밝힌 논문이다. 臺灣의 연구자 張淸治는 蘇軾 <寒食詩帖>에 대한 黃庭堅의 跋文에 나오는 李西臺는 李建中이 아니라 李邕이다는 의견을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역시 臺灣의 연구자인 李郁周는 張淸治의 견해에 반론을 제기하여 李西臺는 李邕이 아니라 李建中이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 두 사람의 주장을 상호 비교하고 &#61440;宋史&#61440;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필자는 黃庭堅 跋文 중의 李西臺는 李邕이라는 張淸治의 의견이 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黃庭堅은 顔眞卿, 楊凝式, 李邕을 蘇軾의 書藝를 구성하는 3대 淵源이자 蘇軾의 書藝가 滋養分을 얻은 곳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黃庭堅 跋文 중의 李西臺는 李邕을 지칭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2. 黃庭堅이 평소 존경하고 추앙하던 蘇軾의 글씨를 평하면서 소식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黃庭堅 자신도 탐탁찮게 여겼던 李建中을 들어 “이 글씨는 안진경, 양응식, 이건중의 필의를 겸하고 있다(此書兼顔魯公·楊少師·李西臺筆意).”는 평을 할리 없다. 그러므로 黃庭堅 跋文 중의 李西臺는 李建中이 아니라 李邕을 지칭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3. 李郁周가 제기한 증거인 &#61440;宋史&#61440; <列傳>「李建中」부분의 “前後三求掌西京留 司御史臺” 구절은 ‘전후 세 차례에 걸쳐 西京留司御史臺를 관장하기를 구한 적이 있다.’는 뜻이지 李建中이 西京留司御史臺의 직을 맡았다는 뜻은 아니다. 李建中은 御史臺의 직에 나간 적이 없다. 御史臺가 곧 西臺이다. 그러므로 李建中을 李西臺라고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 4. 李郁周는 “李邕은 從7品 下의 낮은 관직인 9명의 殿中侍御史중 한 사람일 뿐이었으며 李邕을 ‘西臺’라고 불렀다는 기록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黃庭堅 跋文 중의 ‘李西臺’는 李建中임을 거듭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李邕은 처음 관직에 나갈 때부터 ‘諫諍之官’을 맡았으며 훗날 御史臺의 실질적 首長인 御史中丞을 맡기에 가장 적격인 인물로 추천은 되었으나 간신의 모함으로 인해 그 직에 나가기 직전에 뜻을 접어야 했던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기 때문에 전혀 御史臺의 관직에 나간 적이 전혀 없는 李建中보다는 李邕을 李西臺로 불러야 옳다. 5. ‘西臺’라는 어사대 首長의 관직에 직접 나가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李邕이나 李建中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西臺의 직에 보다 더 근접해 있었던 인물은 李建中이 아니라 李邕이다. 그러므로 黃庭堅 跋文 중의 李西臺를 李邕으로 보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다.

本稿是2012年2月刊登在&#61440;中&#22269;文&#23398;&#61440;(&#38889;&#22269;中&#22269;&#35821;文&#23398;&#20250;)第70集的&#35770;文&#65378;&#33487;&#36732;<寒食&#35799;卷>&#40644;庭&#22362; 跋文考(Ⅰ)37)-作&#35799;·作&#20070;&#26102;期&#38382;&#39064;&#19982;&#65378;此&#35799;似李太白, &#29369;恐太白有未到&#22788;&#65379;句 析意&#65379;的后&#32493;&#30740;究.在本&#35770;文中表明了&#33487;&#36732;&#20070;法作品<寒食&#35799;卷>上&#40644;庭&#22362;的跋文中提及的李西臺身&#20221;. 台&#28286;的&#30740;究者&#24352;淸治首次指出&#23545;&#33487;&#36732;<寒食&#35799;帖>的&#40644;庭&#22362;跋文中提及的李西臺不是李建中而是李邕.之后台&#28286;的&#30740;究者李郁周&#23545;&#24352;淸治的看法提出了反&#39539;,主&#24352;李西臺不是李邕而是李建中.&#31508;者&#23558;&#20004;人的&#35770;文&#36827;行相互比&#36739;,&#23545;&#61440;宋史&#61440;等&#35832;多材料&#36827;行&#30740;究后&#35748;&#20026;&#24352;淸治&#35828;&#40644;庭&#22362;跋文中的李西臺是李邕的意&#35265;更具意&#20041;.得出以上&#32467;果的理由如下: 1. &#40644;庭&#22362;&#35748;&#20026;顔眞卿、&#26472;凝式、李邕是&#26500;成&#33487;&#36732;&#20070;法的三大&#28170;源,也是&#33487;&#36732;&#20070;法得到滋&#20859;的途&#24452;. 因此&#40644;庭&#22362;跋文中的李西臺&#24212;看做是李邕. 2. &#33487;&#36732;不是&#24456;喜&#27426;李建中,而&#40644;庭&#22362;也不是&#24456;&#31216;心李建中.&#40644;庭&#22362;在&#35780;&#35770;平&#26102;尊敬&#24182;仰慕的&#33487;&#36732;作品&#26102;,&#27809;理由提及李建中&#24182;&#36827;行“此&#20070;兼顔&#40065;公&#8228;&#26472;少&#24072;&#8228;李西臺&#31508;意.”的&#35780;&#35770;.因此&#40644;庭&#22362;跋文中的李西臺不&#20250;是指李建中,&#24212;看做是李邕. 3. 李郁周提出的&#35777;据是&#61440;宋史&#61440;<列&#20256;>&#65378;李建中&#65379;部分的 “前后&#21441;求掌西京留司御史臺”句.意思是&#35828;‘前后三次求掌管西京留司御史臺’不是&#35828;李建中在西京留司御史臺任&#32844;.李建中&#27809;有在御史臺任&#32844;.御史臺&#21363;是西臺.因此李建中是李西臺的&#35828;法不&#24403;. 4. 李郁周以“李邕只是&#20174;7品下低官的殿中侍御史九名之一.&#21382;史上&#24182;&#27809;有李邕是‘西臺’的&#35760;&#24405;.”的理由&#23649;次主&#24352;&#40644;庭&#22362;跋文中的‘李西臺’是李建中.但事&#23454;&#21017;否.李邕第一次任‘&#35855;&#35812;之官’,之后被推&#33616;任&#20026;御史臺的&#23454;&#36136;性首&#38271;之御史中丞一&#32844;.但因奸臣所&#35851;,最后未能成志.&#19982;&#27809;在御史臺任&#32844;的李建中相比,李邕&#24212;是李西臺. 5. &#35770;&#27809;任御史臺首&#38271;-‘西臺’之&#32844;,李邕&#19982;李建中是相同&#22788;境.但&#20020;近西臺一&#32844;的人物&#24182;非李建中而是李邕.因此&#40644;庭&#22362;跋文中的李西臺&#24212;看做是李邕.

<논문요약>

Ⅰ. 序論

Ⅱ.「李西臺」인물 규명 -「李西臺」는 누구인가?

Ⅲ. 결론

<참고문헌>

中文摘要

(0)

(0)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