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개항으로 달라진 한국사회의 변화에 따라 불교계도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다. 국가적으로는 대법산을 세우고 관리서를 두는 등 불교를 제도권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하였다. 불교계 스스로는 종단을 건립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1910년 한국을 병합하려는 일제는 한국불교의 독자적 발전을 용납하지 않았고, 제도적 변화와 함께 의례까지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런 근대 한국불교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 경운 원기(1852-1936)이다. 1852년 출생하여 1936년 입적한 선사의 생애는 한국불교의 격변처럼 변화무쌍하였다. 17세 연곡사에서 출가한 이후 보여준 활동을 보면 모두 한국불교 발전을 위한 헌신이었다. 배불정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교로 도약하려는 종단활동에는 반드시 선사의 참여가 있었다. 다양한 포교 활동을 전개하여 불교 발전에 기여하였다. 선사의 활동은 외적으로만 빛난 것이 아니었다. 내적으로도 계율정신에 입각한 수행정진은 일본불교의 활동으로 느슨해진 한국불교의 지계정신을 굳건히 하였다. 또한 선암사 대승암에서 시작된 후학의 양성은 선사의 문하에 석전 및 진응과 같은 많은 名宿들을 비롯하여 근대 한국불교 강원의 강백 가운데 선사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 활동과 명성에 비해 지금까지 연구된 내용이 없다. 경운의 법을 이은 제자 금봉 병연이 선사보다도 일찍 입적한 탓에 선사의 行化를 드러낼 기회가 없었고, 한 평생 주석한 선암사가 오래 동안 갈등 속에 있어 활동과 사상을 드러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젠 전해지는 자료와 활동을 찾아 선사의 뜻을 실천 선양하여야 한다. 본 논문은 우선 선사의 생애와 교화활동을 알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 같은 일이 개인적으로는 선대 스승의 업적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국불교 전체로 본다면 근대 한국불교의 흐름을 정리하는 일이라 그 가치가 크다.
In this paper, I present Ven. KYUNGUN- WONGI's life and activity in modern Korean Buddhism. Opening a port in 1876 changed a Korean society. According to changing, a Korean Buddhism also became different in many ways. Buddhism was accepted in a Korean social system and Buddhism world made denomination themselves, which established the Korean Buddhism's identity. But in 1910 Japanese imperialism colonized Korea and did not permit the Korea Buddhism's independent development. In this environment, KYUNGUN- WONGI leaved his footprints at modern Korea Buddhism. After having become a Buddhist in 17 years old, he devoted himself to development of the Korea Buddhism. Every religious movement to take a leap needed KYUNGUNWONGI's participation vitally.
국문 요약
Ⅰ 서언
Ⅱ 講學과 宗務활동
Ⅲ 敎化활동의 전개
Ⅳ 결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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