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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Possible Korean Translations of σπλαγχνισθείς and ἐμβριμησάμενος in the Pericope of the Cleansing of a Leper(Mk 1.40-45)

나병환자 치유 담화(막 1:40-45)에서 σπλαγχνισθείς와 ἐμβριμησάμενος의 우리말 번역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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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나병환자 치유 담화(막 1:40-45)에 나오는 σπλαγχνισθε&#943;&#962;(41절)와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43절)의 우리말 번역 문제를 다룬다. 문제는 성서에 잘 나오지 않는 evmbrima,omai를 적절하게 번역할 만한 우리말이 없다는 것과 이 담화의 평행본문인 마태복음 8:1-4과 누가복음 5:12-16에 σπλαγχνισθε&#943;&#962;와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들의 적절한 우리말 번역을 제안하기 위하여, 먼저는 이 단어들을 번역한 최근의 우리말 역본들을 비평적으로 고찰해보고, 나병환자에 대한 예수의 감정과 관련된 σπλαγχνισθε&#943;&#962;의 의미를 논하고 또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와 관련이 있는 본문비평적 이문(variant)에 대해 논할 것이다. 그리고 마가복음에서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 단어의 기능들을 규명할 것이다. 한국교회에 오랫동안 예배용 성경으로 읽어온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년)에서는 σπλαγχνισθε&#943;&#962;를 "민망히 여기사"로,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를 "엄히 경계하사"라고 옮긴다. "민망히 여기다"는 "답답하고 딱하여 안타깝게 여기다"라는 의미이고 "경계"는 "뜻밖의 사고가 생기기 않도록 조심하여 단속하다"는 의미로 두 가지 번역 모두 문맥상 우리말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번역이다. 그래서 <성경전서 개역개정판>(1998년)에서는 각각 "불쌍히 여기사"와 "엄히 경고하사"로 개정되었는데, σπλαγχνισθε&#943;&#962;를 "불쌍히 여기사"로 개정한 것은 적절한 것으로 보이지만, "엄히 경고하사"는 여전히 독자들이 받아들이기에 어색하다. "엄히 경고하사"는 "어떤 일이나 행동이 잘못되지 아니하도록 조심하거나 삼가도록 미리 주의를 주는" 것으로 "위험하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예상하여 주의를 준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내용 동등성 번역을 따르는 <공동번역성서(개정판)>(1977년/1999년)에서는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로 번역하는 한편,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의 번역이 생략되어 있다. <성경전서(표준)새번역>(1993년/2001년)에서는 "불쌍히 여기시고"와 "단단히 이르시고"로 그 번역이 순화되었다. 이렇게 기존에 번역되어 있는 우리말 성서 번역들에서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나병환자에 대한 예수의 감정을 반영하는 σπλαγχνισθε&#943;&#962;와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와 관련되어 있는 σπλαγχνισθε&#943;&#962;의 본문비평적 이문을 살펴보았다. σπλαγχνισθε&#943;&#962;의 이문인 &#8000;ργισθε&#8054;&#962;는 아람어 &#1488;&#1514;&#1491;&#1495;&#1502;("그가 불쌍히 여겼다")와 &#1488;&#1514;&#1491;&#1495;&#1502;("그가 분노하였다")라는 단어의 한 글자 차이로 인하여 생겼다. 두 단어 모두 예수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에 나오기는 하지만, 이 본문의 평행본문인 마태복음 8:3와 누가복음 5:13에는 나오지 않는다. 테일러(V. Taylor), 레인(W. L.Lane), 그닐카(R. A. Guelich), 만(C. S. Mann)과 같은 주석가들은 &#8000;ργισθε&#8054;&#962;를 지지하는 외적 증거들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원문일 가능성에 대해 논하였다. (1) 필사자들이 &#8000;ργισθε&#8054;&#962;를 σπλαγχνισθε&#943;&#962;로 변경했을 가능성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2) 평행 본문들에 σπλαγχνισθε&#943;&#962;가 없다는 것은 본래 마가 본문에 없었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단어를 평행 본문에서 없앨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3) &#8000;ργισθε&#8054;&#962;는 예수께서 나병환자에 대하여 분개하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43절)와 부합한다는 것이다. (4) 예수의 분노는 죄와 병과 죽음에 대한 의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5) 예수의 분개는 악한 세력에 의한 하나님의 창조물의 왜곡에 대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츠거(B.M. Metzger)와 오만손(R.L. Omanson)과 다른 학자들은 다른 논의를 펼친다. (1) σπλαγχνισθε&#943;&#962;를 지지하는 외적 증거들은 &#1488; B L 892. 2427. l 2211 pc로 &#8000;ργισθε&#8054;&#962;를 지지하는 외적 증거들보다 훨씬 강하다. (2) 마가복음 3:5에도 예수께서 "노하심"라고 되어 있고 평행본문이 마태복음 12:3과 누가복음 6:10에 이 부분이 없지만, 필사자들이 이 본문을 수정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으므로, 필사자들이 이 나병환자 담화에서 &#8000;ργισθε&#8054;&#962;를 σπλαγχνισθε

1. Introduction

2. Korean Translations of σπλαγχνισθε&#943;&#962; and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

3. The Relevance between σπλαγχνισθε&#943;&#962; and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

4. The Functions of &#7952;μβριμησ&#940;μενο&#962;

5. Conclusion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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