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미츠이에(阿部充家) 사장 재임시의 『경성일보(京城日報)』와 『매일신보(毎日申報)』는 불교를 최우대하는 종교기사 편집방침을 갖고 있었으며, 일본 불교의 홍보와 포교를 지원하는 신문으로서의 성격 역시도 갖고 있었다. 경성일보의 제1면에 가장 많은 글을 연재한 일본인은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다. 그는 도쿠토미 소호(徳富蘇峰)의 전폭적인 후원하에, 아시아, 인도 등지의 체험을 담은 기행문을 2년여나 연재했다. 이 기행문 속에서 그는 조선의 전통 문화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를 했지만, 현대 조선은 오직 경영과 개발대상이라는 시각에서만 보았다. 결론으로 그는 조선이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内正毅)의 선정(善政)으로 양 민족이 상호 번영해가는 공간이라고 썼다. 그는 조선 여행기를 통해 자신이 일본의 아시아 지배 확대를 지지하는 <실업적 제국주의>이자, 일본제 오리엔탈리스트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임제종 묘심사파 조선포교 감독이었던 고토 즈이간(後藤瑞巖)은 아베 미츠이에의 지원 아래 「종교의 요의」라는 포교론을 매일신보에 발표했다. 그는 일본 불교가 국가주의적 종교라는 조선 기독교인의 비판에 대하여, 일본 불교가 「아」의 자각을 목표로 하는 종교이며, 하근기(下根機)를 위하여 타력적 신앙 체계를 적극 운용하고 있는 보편종교라는 점을 역설했다. 그러나 그가 성공적인 예로 제시한 것은 황국사관의 미화와 전쟁 동원을 위해 중세의 역사 속에서 불려 나온 구스노기 마사시게(楠木正成)였다. 그는 구스노기를 보살이자 불교 신앙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이상이라고 극찬했는데, 이로 인해 그의 포교론은 일본 근대 불교의 국가주의적 성격을 반어적으로 입증하는 논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고토 즈이간의 이 포교론은 일본 불교의 정통성과 선진성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 국가주의적인 일본 불교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안고 있었던 당시 포교사들의 면모 일부가 노출된 예라고 할 수 있다.
Ⅰ. はじめに
Ⅱ. 「仏教新聞」としての『京城日報』と『毎日申報』
Ⅲ. 大谷光瑞の紀行文と朝鮮観
Ⅳ. 後藤瑞巖の布教論 - 大和魂と日本仏教
Ⅴ. 結び
文献目録
국문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