壬ㆍ丙兩亂을 거친 조선은 후기로 접어들면서 주자학 일변도의 性理學思想과 排淸ㆍ北伐을 止揚하고 민족적 자아에 대한 각성이 실학자들에 의하여 胚胎되던 시기였다. 동시에, 禮訟이후 湖洛論爭이 사상적 논쟁에서 당쟁으로까지 확대되던 시기였다. 당시 燕行을 통하여 淸나라 문명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실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楚亭 朴齊家(1750~1805)를 들 수 있다. 그는 庶孼出身이었지만 正祖때 奎章閣 檢書官으로 활동을 했으며, 낙후된 조선사회를 개혁시키고자『北學議』를 저술하였다. 正祖로부터 조선의 王安石(1021~1086)이라 불렸던 그는 개혁적 사상가이자 문인이었으며 시ㆍ문ㆍ서화에 능한 예술인이었다. 본 논문은 초정 박제가의 예술관 중에 서화에 관한 심미관을 利用ㆍ厚生이라는 실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 당시 華夷論의 사고에서 벗어나 淸으로부터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북학사상의 당위성을 人物性同異論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기존의 성리학자들이 先本後末的 正德 위주의 정책을 편 반면, 이용ㆍ후생의 중요성을 주장한 그는 書畵에도 효용성을 바탕으로 한 利先義後的 審美를 指向하였다. 예술이란 실생활과 늘 함께하여야 한다는 文質彬彬的 書畵效用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功利的 美學追求를 통하여 백성과 국가가 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문명세계로 도약하기를 기대하였다.
Ⅰ. 序 論
Ⅱ. 北學論의 思想的 土臺
Ⅲ. 實心的 書畵認識
1. 利先義後的 審美指向
2. 文質彬彬的 書畵效用
3. 功利的 美學追求
Ⅳ. 結 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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