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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송눈평원지역 눈강유역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유적의 특징과 문화 변화 양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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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송눈평원지역 눈강유역의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주요 유적의 문화내용상 특징과 문화 변화 양상을 파악하여 부여 문화의 기원을 찾아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지금까지 조사된 유적은 평양묘장을대표로 하여 대략 15곳에 이른다. 이들 무덤의 연대는 전, 중,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전기는 기원전 6~5세기, 중기는 기원전 4~3세기 중반, 후기는 기원전 3세기 후반~기원 전후이다. 전기에 나타나는 문화 변화 양상은 백금보문화에서 한서이기문화로 전환되면서 나타나는 문화내용상의 변화와 더불어 북방초원지역의 일부 문화요소가 유입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동물문 청동패식은 당시 오르도스지역과 장성이북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유목민족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물로 두 지역간의 문화 교류를 설명해 주고 있으며, 이러한 문화요소는 서요하유역을 통해 유입되고 있다. 중기는 한서이기문화가 정착되는 단계에 해당되며, 이 시기에도 지속적으로 북방초원문화 요소가유입되고있다. 후기는다양한종류의철기가수용되고, 압형호가등장하며, 금실로매듭을 엮어서 만든 귀걸이와 타원형 쌍양동포 등 새로운 종류의 북방초원지역 문화요소가 유입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들 유물은 당시 북방초원지역에서 생활하던 동호 혹은 흉노와 밀접한 관련이있다. 당시장성이북지역에거주하던동호가흉노의침입으로와해되자, 그유이민집단이 대거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눈강유역에 문화적 충격을 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두 차례에 걸친 눈강유역의 문화 변이는 북방초원문화를 영유하던 유목계 종족의 집단이주라기 보다는 기존 토착집단이 전통적인 문화를 유지해가는 가운데 시간적 추이에 따라 새로운 문화가 유입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기반은 이후 북이 탁리국의 왕자였던 동명이 남하하여 부여를 건국하게 되면서 부여문화 내용 속에 북방문화요소가 깊게 자리하게 된 배경이 된다. 그 결과 부여를 대표하는 유적인 노하심고분군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게 된다.

Ⅰ. 머리말

Ⅱ. 주요유적

Ⅲ. 유적의 편년과 특징

Ⅳ. 문화 변화 양상 검토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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