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잡지
배급중단으로 아사자와 식량난 심각(1990년대초) 내 고향은 량강도 혜산시 외곽에 위치한 조용한 동네다. 내가 태어날 당시 북한에는 아들에 대한 봉건적 관습이 남아있던 시기라 우리 집은 아들이 태어나기를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딸만 다섯 명 줄줄이 태어나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다섯 딸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그마한 체구에 운전기사를 하셨다. 당시 방직공장 운수직장에서 2톤급 화물차를 운전하셨고 어머니는 시 수매사업소 산하의 수매 원일을 하셨다. 내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북한은 배급제를 정상적으로 운영했고 월급으로 가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1980년대 수산물 상점에 가면 1kg에 40전으로 판매되던 정어리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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