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는 순조와 순원왕후의 맏아들이며, 이름은 이성(李旲), 자는 덕인(德寅), 호는 경헌(敬軒)이다. 외조부는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이다. 세자는 1809년 8월 9일 창덕궁 대조전(大朝殿)에서 탄생했다. 부친 순조의 나이는 20세였고, 가례를 거행한 지 5년 만에 본 아들이었다. 왕실에서 고대하던 원자가 태어났으므로 신료들은 ‘억만년을 이어갈 아름다운일로 전국의 신민들이 기뻐서 춤추며 좋아한다.’고 축하했고, 순조는 ‘이런 큰 경사를 만나 전궁(殿宮)께서 기뻐하시니 나도 매우 기쁘다’고 화답했다. 순조는 원자의 탄생을 기념하여 생모인 가순궁(嘉順宮, 수빈 박씨)에게도 축하 인사를 올렸다. 효명세자는 1812년 7월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817년 3월에 성균관에서 입학식을 거행했다. 세자의 스승은 대제학을 역임한 남공철이었다. 효명세자의 입학식 장면을 그린 왕세자입학도첩(王世子入學圖帖)이 현재까지 전해지며, 필자는 왕세자의 입학식에서 이를 다루었다. 효명세자는 1819년 10월에 영돈녕부사 조만영(趙萬永)의 맏딸인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를 세자빈으로 맞아 가례를 거행했다. 11세 신랑과 12세 신부의 만남이었다. 효명세자는 1827년 2월 18일에 19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시작했다. 그가 대리청정을 한 기간은 3년 3개월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업적을 남긴 세자가 되었다. 효명세자는 아들 헌종이 국왕으로 즉위한 직후에 국왕으로 추존되어 익종(翼宗)이 되었고, 1899년에는 황제로 추존되어 문조(文祖) 익황제(翼皇帝)가 되었다.
1. 갑자기 이뤄진 대리청정
2.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한 행사
3. 효명세자의 친위 세력
4. 효명세자의 급작스런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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