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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멸의 방향성을 극복하는 법, 또는 대양적 감성을 회복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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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문명과 그 불만>에서 나와 남의 경계가 없고 내부와 외부의 갈림이 존재하지 않는 신화적 상태를 ‘대양적 감성’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아이가 아직 어머니의 몸과 자신의 몸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 또는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의 몸과 마음의 연장으로서 거대한 연합체를 이루는 걸 뜻한다. 문제는 이러한 상태가 외부와 내부라는 공간으로 나누어질 때 발생한다. 세포막이 터지면 생명이 사그라지는 단세포 생물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세포생물에서도 내부를 보호하는 일은 생명을 사수하는 사명과 동일한 과제로 인식된다. 난제는 그러한 구분과 방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외부의 대상들, 또는 남이라고 부르는 이질적 얼룩을 지워내기만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러한 구분과 분리는 오히려 생명을 절멸로 이끄는 고립을 초래할 뿐이며, 이로부터 벗어나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두었던 타인들에 대해 관 심을 가져야만 한다. 사실 우리는 평생 내부를 내부로 만드는 외연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며 살게 되는데, 예를 들어 내 몸은 내 가족, 내 새끼로 연장되어 서로 다른 개체들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내부를 이루게 되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도 역시 개인은 다시 내 가족, 내 자식까지 넓혀진 외연으로 나와 남을 분리한 후 내부에 해당되는 요소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인다.

타자라는 얼룩을 아우르는 대양적 감성

나 자신으로 돌아온 타자, 그 부정의 미학을 위하여

이미지에 살고 이미지에 죽는 사람들, 그들의 이자관계를 찢어발기며

절멸의 방향성 대 삶의 방향성

전문가들의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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