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井財閥における番頭經營について
A study on the bantu management of mitsui zaibats
- 한국경영사학회
- 경영사연구(경영사학)
- 제14집 제3호(통권21호)
-
1999.12171 - 188 (18 pages)
- 19
1930년대 군국주의시대에 있어서 일본 최대 재벌인 三井(미쯔이)는 소위 轉向전략을 수립함으로써 군부나 우익세력부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당시 三井을 이끌어온 최고 책임자가 바로 池田成彬(이께다 세이힌 : 1867~1950)였으며 그는 미쯔이 주인들로부터 전면적인 경영위탁을 받은 전문경영자였다. 원래 미쯔이에서는 소유자인 주인은 승진에 불과하며 실제 경영은 番頭(반토)라고 불려져온 전문경영자가 담당해 왔다. 대표적인 番頭로서는 三野村利左衛門(미노무라 리자에몬 : 1821~1886), 益田孝(마스다 다까시 : 1848~1938), 中上川彦次郞(나까미가와 히꼬지로 : 1854~1901), 團琢磨(단 다꾸마 : 1858~1932)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미쯔이 주인들의 이해(利害) 즉 미쯔이전체 재산의 유지와 보전을 책임지고 있었다. 1930년대초 그 당시 일본 경제는 상당히 심한 불황 속에 있었고 커져가는 국민들의 경제적, 정치적 불만은 거대재벌 특히 최대재벌인 미쯔이에 향하여 폭발한 것이다. 1932년 三井合名會社 團琢磨理事長(총수)이 암살당하고 미쓰이는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이 때 고문역였던 益田孝는 미쯔이 주인들의 자문을 받아 三井銀行 상무였던 池田成彬를 미쓰이 합명회사 상무이사로 추천하는 한편, 미쓰이 11家의 本家에 있어서도 세대교체, 즉 三井高棟(미쓰이 타까미네)의 은퇴와 아들인 三井高公(미쓰이 타까끼미)의 취임을 기도한 것이다. 이 결과 새로운 主人-番頭관계인 高公-池田체제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미쓰이의 최고 책임자가 된 池田은 재벌이나 은행에 대하여 독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철학에 따라 미쓰이의 대수술을 강행한 것이다. 한 재벌의 산업독점과 은행지배를 부정한다는 생각은 그 당시에 있어서는 상당히 신선한 가치관이었다. 특히 池田의 경우 미국 하바드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시절에도 두 번이나 구미시찰을 갔다온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선진국에서 배운 것은 池田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池田成彬에 의한 三井防衛政策은 다음과 같은 5가지가 주요 내용이었다. (1) 銀行, 物産, 鑛山 등 주력기업으로부터의 미쓰이 주인들의 사장 은퇴 (2) 기부나 사회사업을 하는 三井報恩會를 설치 (3) 미쓰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의 공개 (4) 미쓰이비난의 대사였던 三井物産 安川雄之助(야스까와 유노스케)의 해임 (5) 중역들에 대한 停年制 실시와 池田의 은퇴 이들 정책들은 상당히 획기적이었으며 재벌의 기본특징을 부정할 정도의 힘과 충격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주식공개는 외부자본의 조달이란 목적 이외에 미쓰이의 산업 및 은행지배를 부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정책들이 발표될 때까지는 미쓰이 주인들의 저항도 많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池田은 자기 힘의 70~80%를 주인들의 설득과 내부조정에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池田이야말로 미쓰이 방위를 위하여 미쓰이 주인들과 가장 많이 마찰을 발생기킨 番頭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