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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無名子 尹愭의 서학 비판 저술과 천주교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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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는 18세기 근기 남인 계열의 인사로서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만년기 제자였다. 그는 성호 문하의 인사였지만 성호우파(星湖右派) 계열이나 성호좌파(星湖左派) 계열에 속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반서학적 인식을 형성해 나갔다. 윤기는 젊은 시절 천주교 관련 서적을 읽은 적이 없으며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천주교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듣고서 그것을 종합하여 천주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전언을 통해서 천주교에 대해 인식을 할 수 있을 만큼 천주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윤기의 천주교 비판 저술은 총 9편으로서 한국천주교회사의 주요 국면과 긴밀하게 대응된다. 1785년 추조적발사건(秋曹摘發事件) 전후로 지어진 2편의 논설은 처음으로 천주학에 대해 인지를 하고 천주교의 이단성과 저급성을 지적한다. 이후 1791년 진산사건(珍山事件) 이후에 지어진 응제(應製) 답안에서는 천주교에 대한 우려와 개탄의 태도를 드러내면서, 천주교는 말로는 금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으니 엄하게 대응해야 함을 역설한다. 1797년 남포현감(藍浦縣監) 재임 이후에는 천주교의 확산을 우려하면서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더욱 부정적으로 굳어져 갔다. 하지만 윤기는 강력하게 천주학을 배척할 것을 주장하면서도, 천주교도들을 모두 죽이는 처형 일변도의 해법을 주장하지도 않았고 나아가 천주교 배척을 명분으로 정치적 라이벌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한 바, 그의 천주교 비판은 학문적 층차에서 우러난 순수한 비판에서 우러난 것으로 생각된다.

緖論

Ⅰ. 尹愭의 생애 주요 국면과 反西學的 입장

Ⅱ. 西學 비판 저술과 천주교 인식 양상

Ⅲ. 18세기 西學 비판의 흐름과 尹愭의 위상

結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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