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저널
이 글에서는 고려시대 鄕藥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조선초기에 간행된 『鄕藥濟生集成方』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우선 고려의 『備預百要方』 등에서는 모든 산출물이 약물로 활용될 수 있고[萬物爲藥論], 하나의 질병을 하나의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一病少藥論]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여말선초에 藥材 生産이 증가하고 經驗方이 축적되자 『鄕藥濟生集成方』이 편찬된 것이었다. 그리고 『향약제생집성방』 판본을 소개하고, 본문의 착오를 바로잡아 원래 형태를 복원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용 의서를 분석하여 여말선초에 宋 醫學이 큰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元 醫學도 그 영향력이 확장됨을 알 수 있었다. 인용된 5종의 향약 의서를 통해서는 『향약제생집성방』이 고려의 의서를 종합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향약제생집성방』의 약재별 통계를 작성하여 다른 의서와 비교함으로써 당시 의술의 실상을 논의하였다. 『향약제생집성방』에서는 1처방당 평균 약재수가 2.39개여서 複方化의 경향이 뚜렷하였다. 그리고 처방하는 약재는 고려처럼 ‘모든 산출물’이 아니라 ‘栽培 藥材’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향약제생집성방』의 향약론은 하나의 질병에 많은 약재를 사용하며[一病多藥論] 재배 약재 위주로 치료한다[藥材爲藥論]는 것으로서, 이것은 고려의 향약론을 극복한 논리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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