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壽王代 高句麗의 西方進出과 그 境界
A Study of the Western Advance and Borders of Goguryeo During the Reign of King Jangsu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 동방학지 제14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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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77 - 314 (3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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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436년 고구려가 북연 국도 和龍에 진출하여 그 결과로서 大凌河와 醫巫閭山을 경계로 북위와 대치하였다고 보았다. 또한 고구려가 479년 地豆于瓜分을 도모하고 오늘날 시라무렌하와 老哈河가 만나는 동몽골에 진출하였다는 것을 다루었다. 이를 살펴보면, 고구려는 북연 국도인 화룡에 대한 북위의 점거를 인정하고 대신에 북위는 고구려의 대릉하와 의무려산 이동에 대한 점유를 상호 인정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魏書』 地形志에 나와 있는 營州 관할하의 6군과 14현을 검토하여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이 중 대릉하의 동쪽지역으로 비정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대릉하 이동을 점유하였던 흔적은 武厲邏라는 고구려성이 遼西에 위치한 것과, 唐代 묘지명 등에 ‘白狼之右’, ‘白狼之野’, ‘問罪白狼’ 등에서 보듯 ‘白狼’의 동쪽을 보통 고구려 지역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 점에서 살필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토대로 하여도 대릉하 동쪽은 436년 사건 이후에 고구려가 점유, 군사지역(Military Zone)화하여 그것이 唐代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또한 『舊唐書』 高麗傳과 『新唐書』 高麗傳에 고구려의 서쪽경계가 營州 즉 지금의 朝陽에 ‘至한다’거나 ‘接한다’라는 기사와 『讀史方輿紀要』에서는 廣寧縣이 고구려에 ‘沒하였다’는 내용, 『盛京通志』에서는 義州 즉 현재 대릉하 연안의 義縣까지 ‘高句麗地’라고 한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결국 장수왕대는 436년 화룡 진출과 그로 인한 고구려의 대릉하와 의무려산 이동의 점유와 479년 地豆于瓜分 도모와 막불하물우 거란 원정 등 고구려의 요서 및 동몽골 진출사에 있어 최성기였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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