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장안불교와 경주불교 상호간의 긴밀성을 확연히 보여주는 사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外延의 문제가 아니라 內包의 문제, 곧 사상사적 관점에서 7세기 후반의 중국불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長安佛敎와 新羅佛敎 간의 사상적 교류에 대한 사례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미리 언급해두지만, 이 사례들은 특별히 새로운 사료들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하나의 흐름 내에서 長安佛敎와 新羅佛敎를 동시에 捕捉함으로써, 그 7세기 후반의 長安佛敎와 新羅佛敎의 交流樣相에 대한 좀더 일관된 視點 을 얻고자 하였다. 장안불교와 경주불교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600년 원광의 귀국 으로부터이다. 그러나 장안불교와 경주불교의 사상적 긴밀성과 상호보완성이 강화된 것은, 玄奘이 인도로부터 귀국하여 신역경론을 번역하면서부터이다. 경주불교계는 현장의 신역 경론 특히 新唯識 學의 발흥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이며, 신라 출신 유학승인 圓測 역시 그러했다. 원측은 현장의 영향을 받으면서 西 明唯識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였는데, 이는 新羅唯識에도 큰영향을 미쳤다. 한편 7세기 중후반 장안과 종남산 일대를 기반으로 삼았던 삼계교의 영향 역시 중대의 대중불교를 대표하던 인물 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대안과 원효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며, 특히 삼계교의 전적으로 추정되는 금강삼매경 에 대한 주석이 원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양자의 직접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 다. 반대로 원효의 저술들은 7세기 말 장안에 전해지면서 화엄종 제3조인 법장의 사상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장안불교와 경주불교 간에는 신라 출신 승려들의 장안 에서의 활동이라는 직접적인 관계와 신역 경론 및 저술의 상호 전파라는 간접적인 관계에 의해서 활발한 사상적 교류가 이루어 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들어가는 말.
Ⅰ 玄奘의 新唯識學과 慶州佛敎의 반응.
Ⅱ 圓測의 西明唯識과 新羅唯識.
Ⅲ 長安의 三階敎와 慶州의 元曉.
Ⅳ 慶州의 元曉와 長安의 法藏.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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