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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拙’을 통해 본 문학 담론의 한 양상 -申湜의 用拙齋에 관한 記文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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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식(申湜)의 용졸재(用拙齋)를 대상으로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일련의 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졸(拙)’의 의미를 추적함 으로써, 그 문학적 담론화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고대 중국의 문헌에 나타나는 졸은 본래 졸렬함, 어리석음, 서?I과 같이 기예적 차원에서 하등한 수준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차츰 자연의 규율에 순응하는 삶의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마침내 심성론적 차원에서 우월한 가치를 지닌 개념으로 인식되었다. 진(晉)의 반악 (潘岳)과 도잠(陶潛), 당(唐)의 두보(杜甫)의 시문에 나타나는 졸이 바로 그것으로, 초월․탈속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던 졸의 개념은 송대(宋代)의 신유학에 의해 다시 한 번 유학적 변용을 겪게 되는데, 학문과 수양의 측면에 국한하여 그 의의를 인정받 았을 뿐, 인간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삶의 목표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성리학적 사유에 기반한 조선중기 문단의 풍정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으므로, 영달한 관료에게 부여된 졸이라는 명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최립(崔岦)과 홍가 신(洪可臣)의 경우, 시대의 이데올로기였던 성리학의 입장에서 매우 완고하고 사변적인 방법으로 심성론적 의미를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반해 유몽인(柳夢寅)과 이수광(李睟光)은 《한비자》‧《열자》‧《장자》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유가와 도가의 분별이 소거된 무한히 긍정적인 가치가 담긴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이처럼 졸은 조선중기 문단에서 문학적 담론의 하나로 뚜렷하게 기능하고 있었으며, 각각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재해석되거나 부연되는 등 폭넓은 스펙트럼을 확보하고 있었다.

1. 들어가는 말

2. ‘拙’ 개념의 생성과 변화

3. ‘拙’ 개념의 문학적 담론화 양상

4. 나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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