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祖代 凱旋 儀禮의 整備와 그 意義
The Organization of the Ritual for Triumphant troops and its meanings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Focusing on Seonropo(宣露布) and Hunkwek(獻馘) Rituals in [Gukjo-Sokoryeŭi(國朝續五禮儀)]-
-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 태동고전연구
- 제3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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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7 - 41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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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정리한 선노포 의례는 전쟁의 승리를 만방에 알리기 위해 비단 깃발(露布)에 승리를 고하는 글을 써서 알리는 것으로, 개선(凱旋)을 의미하는 의례이다. 그리고 선노포의례와 함께 행해지는 헌괵 의례는 전투 과정에서 죽인 적의 수급이나 왼쪽 귀를 왕에게 바치는 의례이다. 선노포․헌괵 의례는 오례[吉․凶․賓․軍․嘉] 가운데 군례에 속해 있으며, 영조 연간에 국조속오례의가 편찬될 때 정식으로 국가 의례에 포함되었다. 이 글에서는 조선의 선노포․헌괵 의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정립되었으며, 어떤 형식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조선 초기에 [세종실록] 「오례」와 [국조오례의]가 정비될 당시 군례는 사례(射禮)를 중심으로 정비되었고, 출전과 개선에 관련된 의례는 정비되지 않았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러한 조선 군례의 특징에 대해 밖으로는 명을 의식하고, 안으로는 장기에 걸친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했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 파악하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외적으 로는 임진 전쟁(1592)과 정묘․병자호란(1627․1636)을 거쳤고, 내적으로는 이괄의 난(1624)과 무신란(1728)이라는 대규모의 반란을 경험하였다. 뿐만 아니라 명이 멸망하고 청이 건국되면서 국제적 정세도 변화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전쟁․반란의 진압과 승리를 기념하는 선노포 의례가 정비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당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의 선노포․헌괵 의례의 성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외부의 침입이 아닌 내부의 반란이었다. 조선에서 형식을 갖춘 선노포 의례와 헌괵 의례가 처음 행해진 것은 인조 2년(1624)에 발생했던 이괄의 난이 진압되었던 때였다. 하지만 인조 연간에 행해졌던 선노포의례와 헌괵 의례는 당대에 국가 의례로 정식 편입되지는 않았다. 선노포․헌괵 의례는 다른 의례처럼 길일을 정하고 준비과정을 거쳐 행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행해졌기에 정밀한 절차의 논의 과정 없이 급하게 시행되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국조속오례의]에 수록되어 있는 선노포․헌괵 의례의 의주 또한 영조 연간에 무신란 진압 직후 실제 사용했던것이 아니라 [국조속오례의] 정비 단계에서 [대당개원례]와 [대명집례]를 바탕으로 개수하여 수록한 것이다. 영조 연간에 선노포․헌괵 의례가 정식 의주로 정비되어 국가 의례서에 수록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조선 군례 증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큰 반란을 두 번이나 경험하면서 임시방편적 차원에서 급하게 시행되었던 의례가 정식으로 수록되었다는 것은 사회적인 분위기의 변화가 국가 의례의 증설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반란을 진 압하고 ‘의례’라는 형식을 통해 괴수의 말로를 만방에 보임으로서 왕의 위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출정과 개선 의례는 천자국의 의례임을 인식하여 의례서에 수록하지 않았던 조선 초기와는 달리 과감하게 승전과 개선 의례를 수록했다는 사실은 조선이 국제적인 천자․제후국 차원의 관계를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The Seonropo(宣露布) ritual was performed when the king’s army won and returned from the battle field to notify the people of their victory. To perform this ritual, they spread a wide silk flag, which looked like a scroll, and wrote down how they defeated the enemy. Additionally, the Hunkwek(獻馘) ritual, which was to offer an enemy’s cut head or ear to the king, was also performed. The Seonropo and Hunkwek rituals were included in the military ritual(軍禮). This ritual was included in Gukjo-Sokoryeŭi(國朝續五禮儀) when it was published during the king Yeongjo period. This research identifies how the Seonropo and Hunkwek rituals were established in the Chosŏn period. In the early Chosŏn period, when the Gukjo-oryeŭi(國朝五禮儀) was organized, military ritual was focused on an archery ceremony(大射禮) and did not involve an organized ritual for war or triumphant troops. In existing related research, this character of Chosŏn’s military ritual was the cause of conscious of Ming and the long duration of peace. However, in the later Chosŏn period, the era experienced not only the Imjin japanese War and Jungmyo·Byungja Invasion, but also suffered Lee Gwal(李适)’s Revolt and the Musin Revolt(戊申亂). Additionally, the Ming dynasty fell and the Ching dynasty was founded. This atmosphere influenced organized military rituals in the later Chosŏn period.
1. 서론
2. 선노포․헌괵 의례의 형성과 시행의 의미
3. 영조대 선노포․헌괵 의례의 성립 과정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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