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저널
임진왜란은 조선왕조가 처음 겪은 전면전이었으며 국제전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사헌부는 서둘러 역전의 용사를 포상하자는 건의를 국왕에게 올렸다. 그리고 3년 8 개월의 심의를 거쳐 「공신녹훈」이 발표되었다. 공신 녹훈이란 공적의 훈격이 결정되고 그 훈격에 걸맞은 품계와 노비, 그리고 녹전(錄田)을 하사한다는 사실을 기록한 문서를 말한다. 그러나 임란공신 녹훈이 발표되자 사관(史官)들은 임란 공신의 선정이 바르지 못하다는 기록을 실록에 남겨 놓았다. 본고가 살펴보려 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임란공신이 민의와 부합된 결정인가? 둘째, 공신 사정 과정은 얼마나 정의로웠는가? 셋째, 공신에게 지급된 공신전 면적은 어느 정도였는가? 이러한 고찰은 군공포상을 하여 군공 당사자와 그 후손들에게 명예심과 자부심을 갖게 하고, 일반백성에게 위국정신을 함양하겠다는 목적이 이루 어졌는가의 해답을 찾아보려 한 것이다.
Ⅰ. 서론
Ⅱ. 군공주체(軍功主體)에 대한 선조와 사헌부의 이견
Ⅲ. 선조의 집권 계략과 선무1등 공신
Ⅳ. 공신전(功臣田)의 지급과 민의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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