琿春 旗地의 소유와 운영, 1879-1931
Changes in Ownership and Management of Bannermen’s Land in Hunchun, 1879~1931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동방학지
- 동방학지 제184집
- : KCI등재
- 2018.09
- 149 - 182 (34 pages)
이 글은 琿春 지방의 당안사료를 분석하여 淸末부터 만주사변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훈춘의 기지가 겪었던 독특한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종래의 연구자들은 청말 民人이 만주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이곳에 있던 旗地가 民戶에게 이전되고 旗人은 雇農, 貧農으로 몰락했다고 주장하지만 훈춘에서는 民人, 朝鮮人이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旗人들의 旗地 소유권은 별다른 침해를 받지 않았다. 旗人들의 생활터전이었던 훈춘평야는 旗丁墾區로 지정되고 외지인의 개간이 금지되었다. 이방인에 의한 開荒은 주변지역에 한정되었다. 뿐만아니라 旗人은 황무지의 개간에도 적극 참여함으로서 오히려 旗地를 확장시켰다. 청조가 멸망한 후에 駐防의 재산이었던 隨缺地, 八旗官地, 官荒 등은 민국정부에 의해 관물로 지정되어 수용되고 매각되었지만 旗人들은 매각되는 旗産을 승계하는데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旗産의 처분으로 생긴 재산도 旗生의 遊學, 旗人을 위한 공장의 설치 등으로 용도가 지정되었고 훈춘의 기인들은 실질적으로 그 혜택을 입었다. 특히, 청말부터 旗人의 교육을 위해 등장하는 學田은 민국시기에 더욱 확대되었고 계속 旗人에 의해 관리되었으며 旗人자제의 교육과 사회진출을 위한 재원이 되었다. 琿春에서 旗地의 위기는 民人 등 이주민이 아니라 日帝에 의해 찾아왔다. 일제가 법적으로 토지매매에 하자가 없는 입적한 조선인을 앞세워 토지를 고가로 매입하면서 대량의 旗地가 조선인들의 손을 거쳐 日帝에게 넘어갔다. 뿐만 아니라 일제는 조선인 권익 보호를 빌미로 국경지역에서 旗地를 침탈했다. 본 연구는 다양한 지역의 旗地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진행함으로서 旗地의 실상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This work describes the unique changes that bannermen’s land(qidi) in Hunchun underwent from the late Qing era to the Japanese imperialist invasion by analyzing archival materials on Hunchun. Most previous researchers have held that as Han Chinese people poured into Manchuria in the late Qing period, they took over bannermen’s land plots in Manchuria, and bannermen were mostly reduced to tenants or farmhands. In Hunchun, however, despite the arrival of the Han Chinese and Koreans, the immigrants barely stripped the bannermen of their land. After the fall of the Qing dynasty, the lands owned by the Eight Banners were confiscated and sold by the succeeding Republican government. However, the Hunchun bannermen could easily recover their land. Moreover, the funds from the sales of the Eight Banners’ land plots were also invested in the Hunchun bannermen’s education and employment, so that they were able to enjoy the benefits. Moreover, the school land(xuetian) that was introduced to support the Hunchun bannermen’s education in the late Qing period continued to be managed by them and was expanded during the Republican era. It greatly fostered bannermen students’ education and helped them to find teaching positions in Hunchun after their graduation. Thus, the crisis of the Hunchun bannermen’s land only started after the Japanese colonialist authorities began to buy the land with the help of Korean-Chinese people in the mid-1920s. This research demonstrates that a more accurate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of bannermen’s lands can only be based on a concrete analysis of various examples of bannermen’s lands in various locations.
1. 머리말
2. 淸末 琿春 旗地의 상황
1) 開荒 이전의 상황
2) 1879년 開荒의 여파
3) 청 멸망 직전의 상황
3. 民國期 旗地의 계승
1) 隨缺地 및 기타 官地의 처분
2) 學田의 형성과 운용
4. 植民地 朝鮮人의 진출과 旗地의 위기
1) 조선인의 토지 소유 증가
2) 일제의 조선인을 통한 旗地 침탈
5.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