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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李仲燮의 群童畵를 中心으로한 兒童化 要素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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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이중섭은 소를 그렸던 위대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소보다 더 많은 아이들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16년 이중섭 사후 60년을 맞이하여 ‘100년의 신화전’의 개최되었는데 이 전시회에서 그전에 볼 수 없었던 많은 개인 소장품들이 전시되었고 특히 많은 군동화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의 군동화는 첫 아들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아들이 하늘에서 행복한 삶을 살라는 기원으로 아들의 관에 아이들과 도교에서의 영원한 삶의 상징인 복숭아 그림을 그려서 넣어 주었다. 이후부터 그의 작품 속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의 군동화들에는 특이한 특징이 있는데 10살 정도로 추정되는 아이들의 모습은 모두 아기의 얼굴로 표현되며 이 아이들과 그림 속 개체들(어린이, 물고기, 동물, 새, 게, 나무, 꽃)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원형 구도는 평화롭고 편안한 분위를 주고 있으며, 아이들의 모습은 전통적인 상감 청자속에 있는 동자상과 유사한 모습이다. 그는 군동화 작품 속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정서를 반영하고 전통 기법을 사용하며 고구려의 벽화의 역동적인 선들을 본따서 그만의 아름다움을 창조하였다. 또한 이중섭의 군동화는 어린이의 상상력과 환상을 표현하며 아이들처럼 특별한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아동화는 아이들의 발달과정을 반영하는 무의식적인 산물이지만, 중섭의 작품은 의식의 논리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중섭의 작품들은 일본에서 주류를 이루던 서양 미술 사조속에서 현대적인 모더니즘과 민족성이 공존하는 미술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일제 식민 치하, 한국전쟁 등 힘든 시기를 살았지만 그는 작품속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잃지 않았다. 이중섭이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기가 아닌 다른 시대에 살면서 활동했다면 아트 딜러나 미술 수집가의 후원을 받았을 것이고 어쩌면 피카소처럼 국제적으로 유명해졌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행하게도 어려운 시대의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서 고생하다 외롭게 죽었다. 이중섭은 비록 살아있는 동안 그의 진정한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군동화속에서 보여주는 그의 순수함과 상상력의 위대함은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Ⅰ. 서론

Ⅱ. 이중섭의 군동화

Ⅲ.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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