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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1947년 3·1절에 나타난 임정법통론과 인민혁명에 대한 미군정의 대응

The American Military Government s Response to the Demonstrations led by the Cause of Provisional Government and the People s Revolution during the 1947 Memorial of the 3·1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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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47년 3·1절을 중심으로 당시 한국의 정치상황을 살펴보았다. 우익에서는 1947년 1월부터 일어나고 있었던 반탁운동의 열기를 힘입어서 김구를 중심으로 임정법통론에 기반한 임시정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김구의 노력은 실패하고 말았다. 다음으 로 좌익에서는 박한영의 신전술에 기초하여 3·1절에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인민투쟁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이런 좌익의 행동은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47년 3·1절을 맞이하여 미군정은 좌우를 막론하고 전국적으로 전개되는 폭력사태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명하였다. 당시 남한에서는 임정법통론도, 인민혁명도 자리 잡기 어려웠다. 오히려 이승만과 하지는 앞으로 세워질 정부는 보통선거를 통해서 수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 다. 이런 이승만과 하지의 생각은 결국 1948년 대한민국을 만드는 기초가 되었다.

This paper examines Korea’s prevailing political situation surrounding the March First Movement of 1947. For the rightists, it was an extended momentum of the Anti-Trusteeship Movement aimed at establishing a government led by Kim, Koo, justified by “Cause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But Kim’s efforts failed. For the leftists, the March First Movement was a nationwide, extensive struggle for the people, based on Park, Hunyoung’s new tactic. However, the leftist actions were mostly unsuccessful, except in Jeju island. On the day of the March First Movement, American Military Government expressed deep concerns about the nationwide violence, regardless of partisanship. Following the March First Movement, it became evident that neither the Cause for Provisional Government nor People’s Revolution were likely to take root given Korea’s political realities. Seungman Rhee and John R. Hodge discover important commonalities between the two factions. That is, the forthcoming government would require the populace support through general elections. This idea resulted in building the found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in 1948.

I. 서론

II. 1947년 3·1절 준비: 우익, 좌익, 그리고 미군정

1. 우익 측의 3·1절 준비

2. 좌익 측의 3·1절 준비

3. 미군정과 3·1절 폭동정보에 대한 인식

III. 3·1절 집회와 1947년 봄 한국 정치의 전개

1. 좌우익과 미군정의 3·1절 집회

2. 좌우충돌과 제주 3·1 사건

3. 임정법통론의 전개와 한계: 김구의 제2의 쿠데타

IV.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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