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명명의 전쟁으로 이어지곤 하는 전쟁명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31년(혹은 1937년이나 1941년)부터 1945년(혹은 1952년)까지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집단적 무력분쟁에 관해서는 태평양전쟁, 대동아전쟁, 미-일전쟁, 그리고 아시아ㆍ태평양전쟁 등의 용어들이 혼재한다. 1950년(혹은 1945년이나 1948년)부터 1953년(혹은 현재)까지 한반도지역의 집단적 무력분쟁에 관해서는 6∙25사변(동란), 6∙25전쟁, 한국전쟁(동란), 조선전쟁, 조국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 그리고 김일성공란 등의 용어들이 혼재한다. 이 연구는 이들 용어들 중 아시아ㆍ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가 전쟁의 시공간적 성격을 좀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한반도) 6∙25전쟁이라는 용어가 적어도 남북한통일 이후에까지 가치중립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용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This paper deals with the politics of “war naming” which often leads to “naming wars,” by focusing on two military conflicts that involved Korea. First, the military conflict from 1931(or 1937 or 1941) to 1945(or 1952) in the Asia-Pacific area has been variously named as the Pacific War, the American-Japanese War, the Asia-Pacific War, or the Great East Asian War(Daitowa Senso). Second, the military conflict from 1950(or 1948) to 1953(or to the present) on the Korean peninsula has different names such as the 6•25 sabyon(incident), the 6•25 jeonjaeng(War), Hanguk jeonjaeng, or Kim Il- Sung’s War. In North Korea, it is formally called the Joguk haebang jeonjaeng(the War of Fatherland Liberation). In China, the conflict was officially known as “the War to Resist America and Aid Korea”(抗美援朝). Analyzing the politics of naming in these two cases, this paper argues that the term of “the Asia-Pacific War” is the tempo-spatially most adequate and the term of “6•25 War in Korea” is politically most nonprejucial which can be used even after the Korean reunification.
Ⅰ. 서 론
Ⅱ. 1931년(혹은 1937년이나 1941년)부터 1945년(혹은 1952년)까지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집단적 무력분쟁에 관한 명명
Ⅲ. 1950년(혹은 1945년이나 1948년)부터 1953년(혹은 현재)까지 한반도지역의 집단적 무력분쟁에 관한 명명
Ⅳ. 결 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