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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General Humanity of an Old and Civilized People”?

“고대 문명인들의 인정(人情)”? - 이탈리아령 프랑스 점령지와 유태인 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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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1월 11일, 이탈리아는 프랑스 동남부를 점령하게 되고 이는 프랑스 역사 중 가장 특이한 장의 개막을 뜻하게 된다. 무려 9개월 동안, 무솔리니의 제4군이 점령했던 론(Rhone) 강 일대와 이탈리아 국경 사이에 있는 지역은 나치의 강제수용소를 피해 도망가는 유럽의 유태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1943년 9월 8일에 이탈리아가 항복하고 철수할 때까지 이 지역에서는 단 한 명의 유태인도 수용소로 보내지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하여 형식상으로 나치 독일의 동맹국인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이탈리아인도 아닌 유태인들을 보호하게 된 것인가? 1946년부터 프랑스·이탈리아·독일 각국의 사학자들은 이 의문의 답을 찾으려 했다. 이들은 이탈리아 점령지에 일어난 일을 ‘역사적 우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피난처’, ‘기적’, ‘암흑 속의 작은 빛’과 같이 다방면으로 표현했지만, 그 목적에 대한 의문은 공통점으로 남아있었다. 그들이 생각해낸 답들은 다소의 차이점을 두고 하나같이 문화·경제·정치·역사적 요소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이후, 1950년부터 1980년도 말기까지의 사학계는 이탈리아의 박애주의를 논하기보다는 서서히 정치·경제적 요소에 집중하는 성향을 보이게 된다. 근래에 와서는 프랑스 점령지 내의 유태인을 구하려고 한 이탈리아보다는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점령지에 사는 유태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책임에 대해서 조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 논문은 이탈리아인들이 유태인들을 구한 이유와 방법에 대한 조사로써, 이를 위해 지금까지 이행된 많은 조사들과 설명들의 변화를 연구하고 이 답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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