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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U.S. Korea Policy, 1942-1950: Vacillating Formative Period

미국의 한국정책, 1942-1950 : 우유부단한 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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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40년대 미국의 초기 대한정책의 특징을 논한 글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1942년부터 전후 세계질서 문제를 영국, 소련 등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인본의 식민지였던 한국문제도 언급되었다. 한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주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주도적으로 제시되었고 영국과 소련이 동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전후 강대국에 의한 한반도의 신탁통치 합의도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은 미국의 최초의 한국정책이었다. 그 정책은 한반도 분단의 기원이 되었지만 한반도의 역사적ㆍ정치적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동기에 의해 결정되었다. 루즈벨트는 소련의 태평양 전쟁 참여를 유도하고, 소련과 전후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한반도의 통치에 소련의 참여를 허용하였던 것이다. 즉 미국의 핵심적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 소련을 배제하는 데 따른 소련의 반발과 미국의 부담을 비교적 덜 중요한 한반도에서 해결하려는 정책적 구상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미국의 한국정책은 트루먼 정부에서 또 한번 변화를 겪게 된다. 루즈벨트의 대소련 유화정책 대신에 강경한 봉쇄정책을 채택한 트루먼은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들게 이어가고 있던 미소공동위원회의 협상에서 유연성을 제거하였으며 미국의 의지와 조건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협상은 없다고 선언하였다. 국제정치적 고려에서 성립된 일시적 분단이 반영구적으로 고착화되는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한반도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전쟁 이전까지 국제정치에 대한 미국의 정책변화에 따라 무원칙하고 변화무쌍하게 한반도 정책이 바뀌면서 미국의 필요에 따라 한반도가 둘로 분할되기도 하고 그 분단이 고착화되었으며, 남한정부 수립으로 미국에 떠안게 된 정치적 부담을 UN으로 이전시켰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킴으로써 군사적 부담도 벗어났고, 미의회의 남한원조 예산 대폭삭감으로 경제적 부담도 벗어남으로써 한반도를 고립무원의 상태로 만들었던 것이다. 분단, 분단 고착화, 한반도 포기라는 무책임하고 우유부단한 미국의 초기 대한정책은 한국전쟁에서 그 대가를 비싸게 치르게 된다.

Ⅰ. Introduction

Ⅱ. Policy in 1942-1948 : Inevitable Division

Ⅲ. Policy in 1948-1950 : Discarding Pawn

Ⅳ.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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