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국왕은 국새와 어압을 군주의 결재수단으로 사용했음이 이미 여러 논문을 통해 밝혀졌다. 그러나 그 외 왕실 인사들인 대비로부터, 왕비, 왕세자, 세자빈 등의 결재수단에 대한 연구는 그간 진행되지 않았다. 2018년 출토된 조선왕비의 ‘내교인(內敎印)’ 2과는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왕실 인사들의 실제 결재용 인장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기 충분한 자료이다. 이 글에서는 ‘내교인’의 출토경위와 현상을 정확히 서술하고, 조선 전기로부터 쓰인 왕비 결재용 인장의 추이를 실록의 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왕실 인사들의 결재용 인장을『은대편고 (銀臺便攷)』등의 규정집을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출토한 ‘내교인’ 2과는 모두 숙황동(熟黃銅)으로 제작하였고, 인뉴(印鈕)는 사자를 얹었다. 솟은 꼬리와 늘어진 귀에는 세밀한 선조로 세부묘사가 되었고, 특히 앞다리와 뒷다리에는 각각 화염문(火炎紋)을 시문하였음이 특징적이다. 중국에서는 한대(漢代) 이후 용․범․사자 등 동물 형상에 화염문을 시문한 경우가 많고 한국의 조각 작품에서도 화염무늬를 흔히 볼 수 있다. 인면에는 소전으로 각각 ‘내교(內敎)’라는 인문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제작양상은 조선 후기 결재용 왕실 인장의 조형성과 제작방법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끝으로 출토한 두 인장의 실제 사용자를 추론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종 때 국새를 포함한 왕실 인사들의 보인(寶印)과 부신(符信)을 정리․간행한『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2종에 수록된 ‘내교인’ ․ ‘소내교인’과의 치밀한 대조를 진행하였다. 이 책에는 이 인장들의 부분별 크기가 촌분(寸分)의 단위로 기재되어 있는데, 현대의 단위로 환산하고 출토유물의 부분별 크기를 실측하여 비교하였다. 또한 문헌자료와 유물에 보이는 인장의 조형적 특징을 통해 출토물의 연대를 비정하였다. 특히 유물 에 가해진 고열에 의한 변형을 1876년(고종 13) 11월 4일 있었던 경복궁 화재와 관련하여 이 인장의 실제 사용자를 추론하였다.『고종실록(高宗實錄)』의 기사를 참고하여 당시 국새와 어보 및 왕실인사의 결재용 인장이 모두 화마를 입었고, 인장 의 중요도에 따른 복원과정을『보인소의궤(寶印所儀軌)』와『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기사를 통해 확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출토물의 주인공을 비정함으로써 유물의 성격과 가치를 더욱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Ⅰ. 서론
Ⅱ. 출토 경위와 유물의 현상
1. 출토 경위
2. 유물의 현상
Ⅲ. 조선 왕비의 인장 제도와 내교인
1. 왕비의 결재용 인장
2. 내교인의 연혁
Ⅳ. 출토 유물의 성격 비정
Ⅴ.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