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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충렬왕 복위 연간 정치세력 분기의 양상 - 김방경 사후 禮葬 철회 사건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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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김방경 사후 그에 대한 禮葬이 ‘用事者’의 반대로 철회된 사실을 실마리로, 충렬왕-충선왕 간 重祚 시기의 정치적 상황과 정치세력이 분기해 나가는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禮葬은 大臣의 喪을 당하여 국가 차원에서 행해지는 최고수준의 喪葬禮法이었다. 김방경에 대한 禮葬을 반대한 ‘用事者’는 前年에 김방경의 아들 김흔이 주도했던 ‘한희유 무고사건’에서 불궤를 도모한 혐의로 고발당했던 한희유였다. 한희유가 김방경에 대한 禮葬을 반대한 것은 자신에 대한 무고가 앞서 발생한 충렬왕-충선왕 간 重祚 사건의 여파로 발생한 사건이었다는 점과 관련된다. 충선왕을 지지했던 김흔 등이 충렬왕 및 그 지지세력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가한 상황에서 김방경에 대한 禮葬을 시행하는 것은 그 정치적 유산을 계승했던 喪主 김흔, 나아가 그 배후의 충선왕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주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었다. 사건 당시 한희유는 충렬왕 세력에, 김흔과 인후 등은 충선왕 세력에 포함되어 격렬하게 갈등했으나, 이들은 충렬왕대 전반기에만 하더라도 정치적 이해와 활동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한 점에서 김방경의 ‘義男’이기도 했던 한희유가 그에 대한 禮葬을 반대하기에 이르는 과정은 이 시기 고려의 정치세력들이 몽골과의 관계 속에서 분기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기도 하다.

Ⅰ. 머리말

Ⅱ. 고려시대 신료의 喪에 대한 국가의 조처와 김방경 禮葬 문제

Ⅲ. 충렬왕 복위연간의 정치상황과 김방경에 대한 禮葬 철회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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