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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성경적이며 실용주의적 개혁가 이원영 목사

Rev. Won-Young Lee as a Remarkable Pragmatist and Biblical Refo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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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봉경 이원영 목사의 성서적이며 실용주의적 개혁가로서의 면모를 그의 설교에 근거하여 밝힌 것이다. 그는 구한말 안동의 강한 유교적 배경에서 성장했지만, 드물게 실용적인 신식교육을 받아서 일찍부터 실용주의, 즉 전통, 사상, 교리보다는 실천, 행동, 결과를 중시하는 태도를 익힌 것을 검증했다. 이런 실용주의적 태도로 인하여 그의 신앙생활 초기부터 기독교의 이론적인 측면이 아니라, 실천적 측면을 강조했고, 홀로 선비처럼 수행하기보다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세우고 돌보는 일에 신명을 바칠 수 있었다. 봉경은 신앙이 단순하게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것 혹은 교리를 수긍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활 개선”인 것으로 강조했는데, 이는 그의 실용주의적 신앙이해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서 생활 개선의 방법을 논의함에 있어서도 실천 가능성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방법을 제시했다. 봉경은 기독교인의 삶을 십자가(고난)의 삶이라고 규정했는데, 이 역시 그의 실용주의적 신앙 이해를 잘 드러낸 것이다. 그는 신앙에 수반하는 고난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결과를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신앙에는 자연스럽게 고난이 따른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영적 고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영적 양식인 성경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 역시 그의 실용주의적 성경이해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원영은 유례가 흔치 않은 바 성서적이며 실용주의적 개혁가였다. 당시 교회 밖으로는 독립이나 공산주의와 같은 정치적 이념이 중요했고, 교회 내에서는 부흥주의와 말세주의가 횡행했었지만, 봉경은 이런 조류보다는 성서의 실용주의적 메시지에 충실한 데서 그의 성경적이며 실용주의적 개혁가로서의 면모는 더욱 빛이 난다. 또한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 창씨개명 및 황민화에 반대한 이유로 거의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자신의 기독교를 지켰는데, 이것 역시 그의 성경적이며 실용주의적 개혁가로서 면모를 더욱 참된 것으로 증명해주었다.

The primary goal of this research is to examine the strong Biblical and pragmatist theology of Rev. Won-Young Lee (1886- 1958) with the pen name of Bonggyung, who has been revered as a living martyr as well as a Confucian scholar pastor (in Korea). Although he was both a native of Andong, a staunchly Confucian city, and a descendant of Toegye, who was the most famous Korean Neo-Confucian scholar, Rev. Lee received quite an exceptional modern Western education (1908-1912), which is believed to have nurtured his unusual pragmatism. His sermons reveal that he had a stark tendency to regard the Christian faith not merely as an intellectual consent to Christian doctrines, but more significantly as “a reformation of life” which has a heavily pragmatic meaning. Accordingly, while preaching, he spoke of many pragmatic themes and illustrations using legal, commercial and medical terms. Rev. Lee also classified a Christian life as a “cross-bearing life,” which was also a pragmatic understanding of a Christian life, which naturally accompanied a lot of persecution and oppression in the pre-liberation era. It is also remarkable that he did emphasize the practical and pragmatic value of the Holy Scriptures, almost ignoring its dogmatic aspect, especially the prevalent doctrine of the plenary verbal inspiration of the Bible. Rev. Lee surely was an unusually Biblical and pragmatic pastor in the very traditional and anti-Christian time and place of Korean history. His significance as a pragmatist and Biblical reformer is even more respectful in that he definitely did not preach about political issues (independence or Communism) or revivalist or eschatological messages, which were quite prevalent in those chaotic times (1930-1958). He was further a “living martyr” as he was called; he was imprisoned four times by the Japanese on the charge of refusing to participate in shrine worship, Japanese naming, and Japanese education. Ultimately, he was release from prison half dead due

Ⅰ. 들어가는 말

Ⅱ. 성서적이며 실용주의적인 개혁가로서의 이원영 목사

Ⅲ. 나가는 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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