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직조활동을 통해서 신라시대 여성의 노동 상황과 노동형태, 그 작업 수준, 그리고 그것을 통한 여성의 사회적 기여 등을 살폈다. 신라는 약 27종의 직물을 직조했으며, 매우 우수한 기술을 지녔다. 일본 동대사 정창원에 남아있는 자초랑모나 또 중국에 보낸 공예품 萬佛山밑에 깔았던 양탄자 및 魚牙紬·朝霞紬 등은 높게 평가받고 있었다. 신라는 織造 과정 중, 길쌈이나 원료재배에서 공동작업을 했던 것 같다. 유리이사금 때 6부의 여성들이 모여 길쌈대회를 했던 사례는 공동 직조작업의 흔적이라 하겠다. 또 素那의 일화에서와 같이 麻典을 지방민이 공동으로 경작하기도 했다. 그리고 신라촌락문서에서 桑을 마을 단위로 파악했고, 麻典을 마을단위로 측량한 점은 직조원료의 공동수급 가능성을 추측하게 한다. 이렇게 직조작업에서 공동노동을 했다는 것은 여성의 노동에 대한 국가의 조직과 관리가 있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신라촌락문서나 단양적성비에서 여성 인구를 연령 등급별로 파악했던 까닭은 이러한 직조활동 과정에서 力役을 부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또 여성의 力役은 직조의 원료 확보를 위한 수목재배나, 방적 및 직조 분야 등에 투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여성의 노동도 국가가 관리해야 했을 것이고, 이로써 여성의 특정 노동을 관장하는 관청이 만들어졌고, 여성 관직자가 이 관청을 관장했다. 신라시대에는 14개소의 관청이 직조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직조 관련 관청수공업장에는 ‘母’라는 여성관직이 있어 작업을 지휘하고 직물을 생산했다. 또 이들은 본피궁에 소속된 私母의 통괄을 받았던 것 같다. 또한 직조를 위한 작업장소는 남녀가 구분되어 여성끼리 일하면서 여성 관직자의 통제를 받았다. 이와 같이 신라 여성들은 생산활동에 종사하면서 力役을 부담했으며, 관청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여성들은 직조활동을 활발히 전개한 결과로 자가소비나 조세납부용 뿐만 아니라 유통을 목적으로 하는 직물도 생산했다. 즉, ‘자초랑댁 모전’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되듯이, 귀족 여성들은 노비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우수한 직물들을 생산했다. 그리고 이러한 산물들은 외국으로 수출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가정에서도 가내수공업으로 짠 직물을 시장에 내다 파는 여성 소상인도 있었다.
국문초록
Ⅰ. 여는 글
Ⅱ. 신라의 직조기술과 여성의 역부담
Ⅲ. 가내수공업과 여성의 상업활동
Ⅳ. 관청수공업과 여성관직
Ⅴ. 닫는 글
參考文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