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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东夷文化史序说 -基于海岱区域古文化的考察

東夷문화사 序說 - 海岱지역 고대 문화에 대한 考察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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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夷人이라는 명칭은 무릎 끓고 앉는 풍속에서 생긴 것이다. 商나라 시기의 甲骨文에는 夷자를 “尸 자로 썼으며, 후대에 이르러 “夷” 자로 쓰게 되었다. 海岱(산동성 및 그 연해지역)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나타난 선사시대의 束夷文化는 구석기시대 초기의 沂源猿人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구석기시대 말기ㆍ세석기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산동성과 그 연안지역에 분포하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後李文化 - 北辛文化 - 大汶口文化 - 海岱龍山文化의 차례대로 선사문화가 발달하였다. 대문구문화의 중ㆍ후기에 이르면 동이문화의 전체 발전수준은 동시대 중원문화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명적 요소가 축적되면서 초보적인 형태의 ‘부락 왕국’ 혹은 “古國”이 나타났다. 해대용산문화시대에 이르면, 문명적 요소가 크게 성장하였고, 더 나아가 도시 국가를 중심으로, 都 - 邑 - 聚 삼급 체제의 方國體系가 형성되었다. 대문구문화와 해대용산문화는 사방의 원시문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전설 속의 太昊ㆍ少昊시대, 즉 대문구문화의 중ㆍ후기 단계에 이르면, 역사학에서 동이족(해대민족이나 해대문화공동체로도 칭한다)으로 부르는 민족도 이 시대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전설 속의 ‘五帝’시대는 대개 고고학의 용산문화시기에 해당한다. 대규모의 부락전쟁과 부락사회의 지속적인 동요, 동이ㆍ西夏와 北狄을 중심으로 하는 중원부락 대연맹의 성립과 발전 및 중원왕조를 향한 과도적인 시기 및 변화들은 華夏의 각 민족을 한 덩어리로 여기게 하는 역사적 관념을 잉태시켰다. 夏왕조 건립 전후의 동이족과 화하족의 투쟁은 중국이 원시사회에서 문명사회로 변화하는 마지막 큰 사건이었다. 하문화의 수많은 중대한 분야들이 전통적 동이문화의 영향을 받았는데, ‘華夏’라는 명칭도 ‘虞夏’라는 명칭이 바뀐 것이다. 商부족은 원래 ‘동이’에서 나왔고, ‘상’문화와 ‘이’문화의 공생과 분화는 긴 역사 과정을 거쳤다. 상문화는 그 전성기에도 뚜렷한 동방적 특정을 지니고 있었다. 夏와 商ㆍ商과 周가 교체되는 시기는 모두 동이 부족의 대이동시기였다. ?夷ㆍ奏夷ㆍ逢國ㆍ商奄ㆍ薄姑氏ㆍ萊夷ㆍ徐夷 등 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서주시기에 이르러, 해대지역문화는 점차 齊문화와 魯문화의 두 갈래로 분화되었고, 이들 문화는 진일보한 방식으로 화하문화에 융합되었지만, 그러나 적지 않은 동이국가들이 스스로의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고 있었다. 전설시대에서 역사시대까지, 동이문화지역은 중원문화가 점차 확대되면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진한이후의 ‘동이’개념은 주로 조선반도ㆍ일본열도가 포함된 동북아 지역 주민을 지칭하게 되었으며, 상고시대 의 개념과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 지역의 문화풍속은 여전히 해대지역의 고문화와 역사적 친연 관계가 매우 깊다.

〈摘要〉

Ⅰ. 考古?所?的史前?夷文化

Ⅱ. ?夷古史??的文化?考察

Ⅲ. 夏代?夷史事?文化?存

Ⅳ. 商代?夷史事?文化流?

Ⅴ. 西周?夷、淮夷史事??域文化?型

Ⅵ. 后世“?夷”?念的?化

參考文獻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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