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인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로 조선과 미국의 군대가 최초로 대면하게 되었는데, 1871년 6월 미국의 해군과 해병력은 현재 남한의 북서 해안으로부터 떨어져 위치한 강화도의 육로를 진군했다. 그 후 대략적인 미 해군의 진군 노선에 대한 기록은 있었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진군로에 대해서는 한미 양측에서 지금까지 실제로 조사 연구된 적이 없었다. 미 해군이 머무르며 지나갔던 주요 경로 지점들인 요새(돈대)들은 현재 그대로 있는데, 돈대와 돈대 사이의 진군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에 본 저자는 미 해군이 1871년에 사용했던 지도들과 그 당시의 사진들, 현재의 지도, 위성사진 등과 함께 미 해군장교들의 보고서와 같은 문헌조사와 여러 번의 현장조사를 실시하여 그들이 진군한 경로에 대한 확증을 얻게 되었다. 미군과 조선군이 사용한 무기류에 대한 조사와 그 무기류의 최대 사정거리와 효과적 범위에 대한 연구로부터 신미양요 당시에 사용되었던 총탄류 유물의 발견이 가능했고, 그러한 증거물로 본 저자는 미 해군의 진군로를 확정할 수 있게 되었다. 1999년에 실시했던 첫 번째 조사에서, 본 저자는 신미양요에 참전했던 미 해군장교들의 보고서와 당시 사진 자료들을 면밀히 살펴보고, 또한 1871년 당시의 강화도 지도의 형세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 검토해 본 후에 신미양요 때의 대략적인 미 해군 진군로를 추정할 수 있었다. 1871년 로저스(Rodgers) 제독에게 제출되었던 미 해군장교들의 보고서들과 비아토(Beato)가 찍은 당시 사진들은 미 국립 공문서(史料) 보관소에 보존되어 있으며, 본 저자도 같은 자료들을 소유하고 있어서 본 연구의 자료로 사용했다. 1871년 문헌에 나와 있는 장소들이 현재 강화도에 실존하는데, 그 해 6월 10일 밤에 미 해군이 야영했다는 지역도 조사했다. 2001년에 본 저자는 금속탐지기를 사용하여 두 번째 지표조사를 실시했고, 손돌목 돈대의 서쪽 언덕에서 신미양요 유물인 포탄 조각을 발견했다. 2010년 가을에 실시했던 세 번째 지표조사에서 본 저자는 금속탐지기와 GPS를 사용하여 탐색했는데, 미 해군의 진군로 지점들을 확실하게 밝혀주는 탄피와 총알과 포탄 파편 등 여러 가지의 유물들을 찾아냈다. 2011년 봄에 본 저자가 실시했던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지표조사에서는 총알, 탄피, 포탄, 산탄 탄알 등을 발견했는데 이러한 증거물들은 1871년 조선군과 미 해군의 위치에 대한 본 저자의 가설을 훨씬 더 뒷받침 해주었고, 그로써 1871년도 강화도에서의 신미양요 당시 미 해군의 진군로를 확실하게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강화도 전적지 주변 지역의 개발로 훼손되기 전에 중요한 역사적인 자료를 보존하기 위하여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
In a relatively unknown, but historically significant action, American and Korean forces faced each other for the first time. In June 1871, American naval and marine forces traveled overland on Ganghwa Island, which is located off the northwest coast of present-day South Korea. While the approximate route has been known since the time of the action, the exact path was never formally studied. The main waypoints the American forces stopped at-the fortresses-still exist, so they are known, but the route in- between was not certain. By studying the map United States troops used in 1871, along with modern maps, old photographs, satellite images, and a review of the literature, including the American officers’ reports, together with several on-site historical land surveys, the author was able to determine, with relative certainty, the route they took. The determination of what weaponry both the American and Korean forces used, along with their maximum and effective ranges, helped in the discovery of relics, which aided in determining troop positions. In the first survey, conducted in 1999, the author was able to establish the approximate route American forces took by comparing the 1871 map with the Ganghwa Island terrain, along with reports of the participating American officers and historical photographs. The original reports, submitted by Rear-Admiral John Rodgers to the Secretary of the Navy, and photographs taken of the 1871 action by Felice Beato, are in the holdings of the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of the United States; the author has an original 1871 edition of the reports and copies of the negatives of the photographs, which were used in this research. Many of the places described in 1871 were still extant, including the areas on Ganghwa Island where American forces camped overnight on June 10 of that year, which added points of reference to the survey. The author conducted a second survey in 2001 and, using a metal detector, found a shell fragment on the hill directly west of the main fortress. In the third survey, conducted in the fall of 2010, the author searched the areas using a metal detector and GPS; the search turned up several relics, including bullet casings, bullets, and shell fragments that helped pinpoint American troop positions. The fourth, fifth and sixth surveys, conducted by the author in the spring of 2011, resulted in the recovery of many more important relics, including bullets, bullet casings, shell fragments, and canister shot, that further supported the author’s hypotheses regarding both American and Korean troop positions. With a high degree of certainty, the route the American and Korean forces took on Ganghwa Island in 1871 was ascertained. Further investigation is necessary in order to preserve important historical data before it is destroyed by development of the corresponding areas.
Abstract
Ⅰ. Introduction
Ⅱ. Overview of Weaponary
Ⅲ. Overview of the Line of March
Ⅳ. Surveys of the Area
Ⅴ. Analysis and Conclusion
References
국문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