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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정조(正祖)의 환영(幻影)

: 조선왕조의 관료제적 군주제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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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여름 49세의 군주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은 조선 왕조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영조와 정조 치세기(1724~1800)의 이른바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가 끝이 났기 때문이다. 곧이어 정순왕후를 정점으로하는 노론 벽파 정권이 출범하면서, 정치 상황은 급변했다. 벽파의 등장으로 반동적 색채가 점차 짙어지는 상황에서 ‘정조 독살설’이 확산되었고, 그 해 가을 ‘인동 작변’으로 이어졌다. 벽파 정권은 반대 정파를 강압적으로 탄압하는 방식으로 이런 소문을 잠재워 나가려 했다. 벽파 정권은 1805년 정순왕후 사후 새로운 집권 세력으로 등장한 노론 시파의 총공세 속에 침몰했다. 벽파 정권은 5년 6개월 집권했던 비교적 단명한 정권이었지만(1800년 6월~1806년 1월), 이 정권이 이후 조선왕조에 끼친 역사적 유산은 엄청났다. 소수의 외척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가운데 세도정치가 제도화 되었고, 1806년 ‘병인경화’의 두 주역인 김조순과 조득영이 이후 세도정치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정조 사후 위로부터 시작된 ‘정치적 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사회경제적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점도 벽파 정권이 남긴 부정적 유산이었다.

King Chŏngjo’s death in 1800 w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events in Korean history that determined the destiny of the Chosŏn dynasty. It marked the end of the ‘Renaissance of Chosŏn’ (1724-1800) during the reign of King Yŏngjo and Chŏngjo, which was followed by the Ch ŏkdang (royal relatives) politics, the main culprit in the stagnation and regression of the Chosŏn society in the 19th century. As the demise of King Chŏngjo had such historically critical impact, it continued to fuel the suspicions about the actual cause of his death.Even a conspiracy theory, indicating at the possibility of poisoning in his death, is still one of the popular topics of the modern Korean society as well as remaining a recurring theme in many Korean periodical stories and dramas.

Ⅰ. 머리말

Ⅱ. 1800년 여름 正祖의 急逝

Ⅲ. 1800년 가을 ‘인동작변’의 발발

Ⅳ. 1800년 여름~가을 ‘정조 독살설’의 확산

1) 공포 정치

2) 戚黨政治의 시작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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