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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대한제국기 이후 삼패의 정치학

Sampae Politics After the Korean Empire - Signification of Anjin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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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기에 삼패는 두 번 호명되었다. 한 번은 대한제국 궁내부로부터 또 한 번은 러일전쟁 직후 일제에 의해 통제되는 경시청으로부터 각각 공연자와 매음부로 규정되었다. 삼패에 대한 호명을 주도했던 권력의 변화 때문에 벌어진 삼패에 대한 규정 차이는 긴장을 야기했다. 그러나 양자 간의 긴장은 규율 권력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가무 활동을 통해 조정되었다. 특정 집단의 정체는 이념이나 권력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행위나 제스처 혹은 이미지 등과 같은 다양한 양식을 통해서도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삼패는 가무 활동을 통해 자신을 규정한 권력에 순종적이기도 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항하기도 했다. 이에 본고에서는 고종황제의 칭경의례로 상징되는 독립국가의 이념과 러일전쟁 이후 경무청으로 상징되는 제국주의 이념이 삼패 정체의 구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삼패가 권력에 훈육되어 순종적이었던 점과 한편으로는 권력의 감시 밖에 있었던 기예를 통해 권력에 대항하기도 했음을 정리했다. 삼패는 관기와 함께 극장무대에 선 이후 스스로 공연자의 정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궁중악무 전문가에게 정재를, 그리고 민간의 가객과 율객에게 풍류를 학습했다. 삼패의 가무 학습은 공연자라는 정체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정재라는 기예는 관기를 정점에 놓는 전근대적 위계구도 속에 비평되었기 때문에 삼패가 절등한 기예에 도달한 경우라 할지라도 관기 이상의 평가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1912년에 관립극장이 폐관되고 극장가의 주도권이 사설극장으로 넘어간 이후에야 비로소 삼패의 기예에 대한 비평적 입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흥행계의 자본과 그것의 운영 방식이 합리화되고 한편으로는 대중이 성장하면서 통속가요가 재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삼패는 자신들에게 전승되던 안진소리에 매진함으로써 기예 활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안진소리는 삼패를 절현하는 부호가 되었다. 이 무렵 경무총감부령 제3호(1916)가 발령되면서 삼패는 기생과 법적으로 동등한 존재가 되었다. 이 점에서 삼패의 안진소리는 전근대적 위계는 물론이고 일제의 제국주의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부호였다고 이해된다. 삼패가 호명될 때 작동했던 전근대적 위계 구도와 일제가 재생산한 차별 구도는 삼패의 노래를 통해 철폐되었던 것이다.

This paper undertakes to explain the constitutional process of identity of Sampae, a female musician and dancer after the Great Korean Empire. Interpellation of Sampae was tried twice during the Korean Empire era, the first was by the performing bureau, Hyeplyulsa controlled by Kungnaebu of Great Korean Empire, the second by the police agency, Kyengsicheng governed by Japanese colonial apparatus, Tongambu after the Russo-Japanese War. As the change of dominant power during the Korean Empire, The identity of Sampae couldn’t be single. Japanese colonial power re-interpellated Sampae. Interpellation transformed individuals into discursive subjects which were controlled and prescribed by the cultural norms from the dominant power. In 1902 Sampae was interpellated as a performer from the empire theatre to celebrate 40 years for the inauguration and the Mangyuk(the 51th birthday) of the Emperor Kojong. After the Russo-Japanese War Japanese colonial apparatus had the power, they prescribed Sampae as a prostitute from the police agency, Kyengsicheng controlled by the Japanese colonial power. The process of interpellation is to elaborate an underlying mechanism of ideology her as subject. Actually her body was docile to it. However, Althusserian interpellation is not reducible to ideology as Foucault, Butler, Hall, etc. had said. She could resist it. Because identity consists of various models of identification based upon different signifiers such as behaviors, musical languages, gestures. Sampae’s performing arts could articulate different identities in the subject. In this point I tried to explain signification of Jeongjae and Ajinsori. As the dominant national theatre was closed in 1912 only private theatres could have run. Then the capital invested to the cultural industry and the running system of the performing arts products changed Sampae’s social position. When the only national theatre was run it couldn t articulate herself with learning and performing the court dance, Jeongjae traditionally belonging to the Kwanki(the official royal female performers or Kisaeng). However her exclusive inheritance called Ajinsori make it possible after 1912. Continuous singing activities of Ajinsori made her escape to prescription of prostitutes. And then Ajinsori made her musicians like Kisaeng. And that tine the administrative decree posted as the third ordinance by the president of Kyengsicheng in 1916. Sampae recovered the position of the performers and then became official Kisaeng. It would be said this is the case of subversion of the hierarchy of pre-modern era and resistance to the force of that days with Anjinsori which was exclusively passed down to Sampae.

1.머리말

2. 삼패의 규정과 권력

3. 삼패의 기예(技藝), 도전과 저항의 기호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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