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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한국 대중가요사 최초의 유행가 전업가수 채규엽(蔡奎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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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가요사 요람기인 1920년대 중반~1930년대 초반에 유행가를 취입한 주요 가수는 김추월⋅김산월⋅도월색, 백목단⋅이영산홍, 채규엽, 이정숙, 복혜숙, 이애리수, 강석연, 전옥, 김해송, 고복수, 이난영 등이었다. 강홍식, 선우일선, 김용환, 최남용, 노벽화, 이은파, 이규남, 유종섭, 남일연, 왕수복, 신카나리아 등도 활약이 컸다. 이 가운데 김추월⋅김산월⋅도월색⋅백목단⋅이영산홍 등은 판소리, 잡가, 민요에 전념했고 나머지 가수 들은 유행가를 전문으로 불렀다. 유행가 가수 중에 주요 남가수는 채규엽, 고복수, 김정구, 남인수, 백년설, 순으로 데뷔 및 전성기를 보냈는데 채규엽에 대해서는 잘 알려 있지 않다. 채규엽은 성악가, 교사, 작사가, 작곡가,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는 콜럼비아⋅시에론⋅오케⋅태평⋅포리돌레코드사 등에서 민요와 유행가는 물론 동요, 요들송까지 도합 210여 곡을 부른 우리나나라 최초의 유행가 전업가수이다. 하지만 그는 레코드회사에 대한 전속성이 희박했고, 한국에 콤비 가요작가를 두지 않고 대부분 일본 작곡가와 합작하거나 엔카풍 가요를 불렀다. 현실 생활면에서도 스캔들, 결혼 및 금전 사기, 일본 육군 지원, 자기도취적인 돌출적 행동을 하다가 인생 말년에 남한에 가족을 두고 홀로 월북했다. 한국과 일본, 북한 세 나라에 걸쳐 살았지만 국가적 주체성이 없이 살았다. 그러나 채규엽이 한국 대중가요사 최초의 유행가 전업가수이며, 일본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 가수이고, 한국 최초의 싱어 송라이터였음은 가요사에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1. 들머리

2. 유행가 곡종 탄생과 채규엽 등장

3. 채규엽의 성장과 학업, 성악활동 요약

4.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되다

5. 채규엽, 오케레코드사로 전속사를 옮기다

6. 채규엽, 태평레코드사로 전속사를 옮기다

7. 채규엽, 포리돌레코드사로 또 전속사를 옮기다

8. 마무리

[부록] 채규엽 연보

채규엽 가요의 음반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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