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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상관(喪冠)의 형태에 대한 고찰 -정약용(丁若鏞)의 ≷상례사전(喪禮四箋)≸ 「상복상(喪服商)」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Shapes of Sanggwan(喪冠): Focused of Jeong Yakyong’s Sangboksang(喪服商) of Sangraesajeon(喪禮四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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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상복(喪服)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가운데 머리에 쓰는 상관(喪冠)에 초점을 맞추어 정약용(丁若鏞)이 제시하는 형태를 고찰한 것이다. ≷의례(儀禮)≸ 「상복(喪服)」은 상복의 형태를 규정하는 경학적 근거로 후대까지 존숭되어 왔다. 조선의 상복 제도는 주자(朱子)가 「상복」과 송 대의 시속을 적절하게 반영하여 저술한 ≷가례(家禮)≸를 중심으로 시행되었다. 정약용은 ≷가례≸를 존숭하면서도 고례인 ≷의례≸에 대한 세밀한 고증으로 창의적인 상관의 형태를 제시하였다. 관(冠)은 머리에 쓰는 것으로 머리를 중요시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상관(喪冠)도 ‘관’의 한종류로서, 머리 정수리를 덮는 부분인 관과 머리둘레를 두르는 부분인 무(武)로 구성된다. 정현(鄭玄)의 주석 이래로 한 가닥의 끈으로 무를 만들면서 상관이 관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상관의 안에 다시 건(巾)을 써서 형태를 지탱하거나 머리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정약용은 고례에서 상복이 변복(弁服)이었으므로 상관은 변(弁)의 제도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상복」에서 상관에 관해 분명하게 기록하지 않은 이유가 상복이 변복을 원용한 것이므로 관과 무의 소재와 크기는 모두 변과 같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경에 기록이 없는 부분은 조선의 조복(朝服)과 제복(祭服)이 고례의 변복에 해당하므로 양관(梁冠)을 기준으로 상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정약용의 제안은 고례에 대한 정밀한 고증을 통해 상관이 변복의 변과 동일한 규격과 소재임을 규명함으로써 ‘한 가닥의 끈으로 만든 무’로 해석한 정현의 오류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곤란함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나아가 당시 조선 사람에게 익숙하고 제작하기 편리한 양관의 형태로 상관을 만들어 사용하도록 하여 의례의 수행 가능성을 높이려고 한 것으로 평가할 수있다.

This paper examines Jeong Yakyong’s view by focusing on the Sanggwan among various Sangbok(喪服). ‘Yili’(儀禮) Sangbok has been respected to later generations as a rationale for defining the form of mourning. The mourning system of Joseon was centered on the Family rituals(家禮) that the Song dynasty respected Zhu Xi(朱子) wrote which appropriately reflected the traditions of Sangbok and Song dynasty. While Jeong Yakyong respected the ‘Family rituals’, he made creative arguments about the form of the Sanggwan with detailed testimony to the Gorea(古禮) s ritual. Gwan(冠) is a hat that is worn on the head and it symbolizes the importance of the head. Sanggwan is also a kind of ‘Gwan’, which consists of the head covering Gwan(冠) and Mu(武) that is put around the head. Since the Chinese philosopher Zheng Xuan(鄭玄) s remarks, Sanggwan has been unable to function as a Gwan, making Mu from a strand of string. In order to compensate for this, there was a situation in which Gun(巾) was worn in Sanggwan again to support the form or to fix the head. Jeong Yakyong insisted that Sanggwan was based on Byun(弁) s system because Sangbok was Byunbok(弁服). It was interpreted that the reason why Sanggwan is not written clearly in Sangbok is because Sangbok made a use of Byunbok, so the material and size of Gwan and Mu are the same as Byun.The part where there is no record in Jing(經) is suggested that Jobok and Jaebok of Joseon Dynasty are the ByunbBok of the ritual, so Sanggwan should be made based on Yanggwan. Jeong Yakyong s proposal revealed that Sanggwan is the same standard and material as Byun of Byunbok through precise investigation of the ritual thereby tried to correct Zheng Xuan s error and the difficulties that resulted from Mu made of one strand of string . In addition, it can be evaluated that they attempted to increase the performance possibility of the ritual by making Sanggwan in the form of Yanggwan, which is familiar to the Joseon people and convenient to make.

1. 서론

2. 고례(古禮)에 규정된 상관의 형태

3. 조선에 전해진 상관의 형태

4. 정약용이 재해석한 상관의 형태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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