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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올바름(honestum, 義)과 이로움(utile, 利)에 관한 교부학적 연구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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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름(honestum, 義)과 이로움(utile, 利)에 관한 논의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오랜 세월 펼쳐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스토아 철학 전통의 키케로가 기원전 44년 의무론 De officiis을 저술하여 올바름(honestum)과 이로움(utile)을 철학적으로 성찰했다.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성직자들과 그리스도인을 위한 최초의 윤리 교과서인 성직자의 의무 De officiis ministrorum를 388-390년경에 펴냈는데, 이 작품은 키케로의 의무론 을 뼈대로 삼은 올바름과 이로움에 관한 최초의 그리스도교적 해석이다. 그를 이어 아우구스티누스는 올바름과 이로움에 관한 기존 해석을 토대로 향유(frui)와 이용(uti) 사상을 심화하고, 마침내 사랑의 질서(ordo amoris)에 관한 이론을 정립한다. 암브로시우스는 성경의 ‘참된 본보기(vera exempla)’를 바탕으로 올바름과 이로움을 설명하면서, 올바른 것은 이롭지 않을 수 없으니 올바른 것은 이롭고, 이로운 것은 올바르기 때문이라고 결론 짓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올바름을 인간이 사랑해야 할 궁극적 대상, 곧 향유해야 하는 최고선(summum Bonum)인 아름다움 자체(pulchritudo ipsa)와 동일시했다. 그리고 이로움(utile)은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거룩한 섭리(providentia divina)라고 했는데, ‘하느님 안에서(in Deo)’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이로움도 올바름과 같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무한 수익과 이윤 창출이 ‘최고선(Summum Bonum)’과 동일시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인간과 생태를 도구화하는 ‘통속적 이로움(utilitas vulgaris)’을 참된 이로움에서 구별하라고 교부들은 호소하고 있다. 참으로 이로운 것은 어떤 경우에도 올바름과 분리되거나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The discussion on honestum(the honourable) and utile(the useful) has been going on for many years both in the West and the East. In the West, Cicero, a stoic philosopher, wrote De officiis in 44 BC, philosophically examining honestum and utile. St. Ambrose, the Bishop of Milan, published De officiis ministrorum, the first ethical textbook for clergy and Christians, around 388-390, which is the first Christian interpretation of honestum and utile based on Cicero’s De officiis. After Ambrose, St. Augustine deepened the idea of frui and uti, based on existing interpretations of honestum and utile, and finally established the theory of the order of love(ordo amoris). Ambrosius explains honestum and utile based on true examples(vera exempla) in the Bible, concluding that hoenstum cannot but be utile because honestum is useful and utile is honourable. Augustine equated honestum with the beauty itself(pulchritudo ipsa), the ultimate object to love, and the Summum Bonum which must be enjoyed. And he said that utile is divine providence(providentia divina), which is beneficial to man, and that as long as it has a relationship with God(in Deo), utile can be understood on the same level as honestum. While we live in the neoliberalism era, where infinite profit and profit making is equated with the Summum Bonum, the Church Fathers appeal to distinguish between utilitas vulgaris, which downgrades humans and ecology as tools, from true utile. In no case can what is truly useful be separated or confronted with honestum.

Ⅰ. 머리말

Ⅱ. 암브로시우스의 해석: 올바름(honestum)과 이로움(utile)

Ⅲ.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 향유(frui)와 이용(uti)

Ⅳ.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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